1. 북정마을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그래서 요즘 더 알뜰히 아내와 산책을 다닙니다. 이번 주말엔 삼청공원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와룡공원으로 이어진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공원 입구에는 항상 차들이 복잡하게 주차를 하고 있어서 외면했었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졌네요.
공원 자체가 멋지다기보다는 한양도성 성곽길이나 이런저런 공원들과 연결되는 허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네요. 자료를 찾아보니 슬픈 기록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구요.
갈림길에서 성북동 쪽으로 갈지 혜화동 쪽으로 갈지(어차피 나중에는 만나지만) 선택해야 하는데 성북동을 택했고, 도중에 북정마을이란 곳을 만났어요. 입구가 작아서 차로 지나칠 때는 알 수가 없는 곳이었네요.
'달동네' 같은 마을, 지금도 산신제를 지내는 마을, 재개발을 기대하고 외지인들이 사놓은 빈집들이 많은 마을, 그런 사람들을 욕하는 동네 할머니, 그래도 마을에 애착을 가지고 새집을 지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칭찬하는 할머니, 신용카드는 되지 않지만 친절한 동네 슈퍼, 조용한 전기 마을버스가 다니는 마을, 80년대 일본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커플이 쇼핑몰에 올릴 사진을 찍는 마을, 그걸 신기하게 쳐다보는 동네 사람들, 빈촌부터 부촌까지 성북동이 한눈에 보이는 마을, 가파른 비탈을 벗어나자 현실적 건물이 솟아나는 마을.
카페나 음식점은 없습니다.
2. 《학교를 그만두고 유머를 연마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시 읽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시인은 최민우. 처음 듣습니다(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이, 제가 요즘 시인들의 이름을 들어도 아는 사람이 있겠나 싶어서입니다). 책에 나온 소개는 이렇습니다.
2021년 웹진 《아는사람》에 에세이 〈20세기 아는 사람〉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전자양을 즐겨 듣는다.
허세 없는 자기 소개가 딱 제 취향입니다. 저 웹진은 없어진 것 같네요. 저 대학생일 때, 시를 즐겨 읽고 썼습니다. 전공자로서의 자부심이랄까 그런 허장성세가 있었죠.
그때도 젊은 시인들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가 좋았어요. 나이를 먹고 인생을 겪어봐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지. 암. 뭐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치기와 실험과 독창성의 아슬아슬한 삼각 경계에 있는 젊은 작가들의 언어가 좋았습니다. 제 B급 정서 취향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B급'이란 것도 주류의 위치에서 바라본 것 아닐까요?
제가 어떤 시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은 어떤 시구들을 몇 번씩 읽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구는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과 생각을 퍼뜨립니다. 만화경처럼 이미지가 계속 바뀌죠. 아무것도 물고 있지 않은 입안의 맛도 달라집니다(호사에 겨운 뇌의 착각이겠죠). 그렇게 그 시와 시인을 좋아하게 됩니다.
가령 이런 것들이죠.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고립됐다는 뜻 아닙니까?
— '소시민' 중
침팬지 클라라는 강으로 흘러든 폐수를 마시고
얼룩소 부이는 쓰레기 언덕에서 밤새 옷을 되새김질하고
조만간 내가 먹는 밥에도 고무 씹는 맛이 날 것이다
— '폭설 여름' 중
기억을 보내 주시면 잠으로 교환해 드려요.
— '정체성' 중
평범했는데 본 적 없는 내 인생을 적어 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빛이 먼지를 지그시 누른다
(…)
따사로운 햇살은 하루 이틀이면 막을 내렸다
너는 누구와 걸어도 사랑에 빠질 날씨라고 했고
나의 대답은 도심 속 발걸음처럼 느려진다
— '롱 숏' 중
이런 것들을 좀 더 찾아볼 계획입니다.
3. 지구
크라카우어는 《영화의 이론》에서 "어쩌면 외견상 비본질적인 것을 흡수해야 비로소 잘 잡히지 않는 생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인간 조건이 아닐까?"(p.14)라고 하며, 곧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서식처인 이 지구"와 맺고 있는 관계를 심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의 가장 내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라는 단어를 듣자 머리 속에 종이 울립니다. 최근에 이 지구를 엄중히 언급한 책을 읽었죠.
"파우스트적 인간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서, 지구는 자기 영속의 유일한 영역이 되었다."
— 《악에서 벗어나기》, p.135
저는 어니스트 베커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듯이 들리는데요, 이 둘의 지구는 같은 지구일까요, 아닐까요? 이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읽기가 될 것 같네요.
4. 'November'
Brian Green의 〈Music For Home〉 중 'March'
11월이니까 'November'도 들어보죠.
요즘 스포티파이가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데이리스트Daylist')를 매일 시간대별 다른 장르의 음악들로 만들어주고 있어요. 좋긴 한데, 그 수많은 회원들에게 이렇게 제공하는 게 가능한 거였나하는 생각도 들면서 좀 무섭죠.
시간대별로 컨셉이 있는데, 예를 들어 제목이 이렇습니다. 'ambient soundscape sunday night'. 음악 장르, 요일, 시간대 등을 조합해서 만들죠. 그런데 선곡된 곡들이 제 취향과 꽤 잘 맞아요. AI가 내 청취 기록을 이용해서 만들었겠죠. 하루에 몇 번이나 바뀌는지 찾아봤더니 정해진 횟수는 없고 '많이 들을수록 자주 업데이트된다'라고만 나와있군요.
이 곡들도 그렇게 알게 됐어요.
5. 굿즈 만들기
굿즈를 만들어볼까 생각해보고 있어요. 책갈피, 엽서, 아크릴 문진, 스탬프, 장서인, 스티커 등등이 후보입니다.
요즘은 자신만의 굿즈를 만들기가 너무 쉬워지긴 했는데, 이왕 만드는 거 특별함 한 스푼을 넣어보려고 하니 이것!하고 결정을 못하겠네요. 조금씩 샘플만 만들어서 써보고 있어요.
이왕이면 책, 읽기, 공부 등과 관련된 것, 손때 묻히며 오래 쓸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배우고 있는 전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구요.
그중 가장 괜찮지 않을까 싶은 건 장서인 또는 장서표예요. 문제는 장서인(표)는 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좀 쉽게 만들어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중입니다.
그래서 지금 상태는 오리무중이네요. 도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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