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9 '조력 사망'을 아시나요
애니타 해닉, 《내가 죽는 날》 (2025)
책을 읽고 여기에 글을 쓸 때 '내용 요약'은 되도록 피하려고 하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을 요약하는 것은 AI를 이용해 10초 안에 할 수 있다. 오늘 말하려는 《내가 죽는 날》을 챗GPT에게 요약하라고 하면 이렇게 꽤 괜찮은 결과를 내놓는다.
이런 상황이니 책을 단순 요약하는 것은 이제 AI에게 맡기는 것이 낫겠지만, 읽는 분들의 이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개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내가 책의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지에 따라 단순한 요약과는 많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책 전체가 아니라 단면(들)을 다루고 있다고 봐주는 것이 좋겠다.
《내가 죽는 날》, 애니타 해닉(지음), 신소희(옮김), 수오서재, 2025
Anita Hannig, The Day I Die: The Untold Story of Assisted Dying in America (2022)
《내가 죽는 날》은 미국의 인류학자 애니타 해닉이 5년에 걸쳐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서 조력 사망 제도를 현장에서 직접 관찰, 연구한 결과물이다. 안락사나 존엄사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 '조력 사망'(assisted dying)은 생소한데, 질병으로 인해 말기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의학적 조력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가리킨다.
미국에서는 최초로 오리건주가 1994년에 이 조력 사망이 가능한 존엄사법을 통과시켰고, 유예 기간을 거쳐 1997년에 발효되었다. 법률이 있다고 해서 조력 사망을 쉽게 선택할 수는 없다. 조력 사망에 적합하다고 인정받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고, 고통과 마비에 시달리는 말기 환자의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으며, 의료진을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과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의 논의 상황은 이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죽음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문화는 미국과 한국 사회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평생 시신을 보거나 임종을 목격한 적 없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시신은 장례 전문가가 처리해 죽음과 일반인 간의 거리를 유지한다. 이렇듯 산 사람이 임종 과정과 죽음에서 배제되며 죽음을 불편해하는 문화가 한층 더 강해졌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길 꺼린다. 그 결과 죽음은 병원과 장례식장에 격리되고 전문가에게 맡겨져 일상 대화에서 금기시하기에 이르렀다. 장의사이자 작가인 케이틀린 도티는 이처럼 죽음이 눈에 띄지 않게 된 현상을 '죽음 디스토피아(death dystopia)'라고 부른다. 현대 미국 사회와 죽음의 관계는 침묵, 부정, 억압에 감싸여 있다. (119)
암 말기 환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나로서는 이 조력 사망을 강력히 지지할 수밖에 없다. 간신히 숨만 쉬고 심장만 뛰게 만들어놓는 연명 치료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극심한 고통을 피하는 방법은 점점 용량이 늘어나는 모르핀밖에는 없으며, 그 결과로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가족과 맑은 정신으로 작별인사 몇 마디조차 나누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그나마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디행일까.)
해닉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인데, 그것은 조력 사망에 동의하는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신념이야말로 조력 사망에 관여하는 처방 의사들의 가장 뚜렷한 공통점이다. 자기 관점에서 최선인 치료를 환자에게 종용하는 의사들과 달리 이들은 환자의 자율성을 옹호한다. (174)
해닉은 조력 사망의 당사자, 가족, 의사, 자원봉사자 들에 깊이 공감하며 기록하는데, 인류학자임에도 그 글들은 깊은 울림을 준다. 뉴 저널리즘 스타일의 글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는 "이 책은 논픽션이다. 모든 사건은 내가 묘사한 대로 일어났다"고 분명히 밝힌다. 2018년에 《수술 너머》(Beyond Surgery)라는 책으로 미국 의료인류학회에서 수상한 적도 있다는데, '의료인류학'이란 인류학 분과가 있다는 것도 다소 놀랍다.
내가 《죽음의 부정》 이후로 죽음에 관한 책을 탐독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음을 은폐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숫자로만 확인하는 죽음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죽음,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말이다. 그것이 현재의 삶을 더 선명하게, 그리고 죽음이 도피처가 아니라 일종의 전환(내세가 있든 없든)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해닉의 이런 제안은 반갑다.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끈질기게 부정한다는 점이다. 죽음을 적으로 여기면 죽음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죽음을 회피하려 할 경우 그 불가피성을 직면하기가 지독하게 고통스러워진다. 죽음을 향한 침묵과 회피를 깨뜨리려면 나이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삶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과의 관계를 탐구할 공간과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일찍부터 삶의 마지막을 두고 대화를 시작하면 죽음에 관한 사회적 지식을 되찾을 수 있다. (306)
이런 죽음에 관한 일상적 논의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법률이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당연하겠지만 사회적 논의를 통한 집단적 숙고 없이 법부터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삶이 소중하다면 그 끝 역시 소중하게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 〈노상기록〉 55호(2025.8.13)



50대가 되고... 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해 보니... 죽음이 그다지 멀지 않음을 느끼게 되네요! 한 인간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야 없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어느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면...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쯤 죽음을 마주할 수 있을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