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표(藏書票)는 다들 알다시피 “자기 장서임을 표시하여 책에 붙이는 표”1인데, 요즘 나도 내 장서표를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면 동양스럽게 장서인(藏書印)을 만들까 싶기도 하지만 그림을 함께 넣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물론 장서인에도 그림 표현이 가능하긴 하지. 이 분 작품처럼 말이야.
문제는 표(票)든 인(印)이든 어떤 글과 그림을 넣고 싶은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거야. 이름 석자만 넣고 싶지는 않거든.
《장서표 100》을 보면 서양 유명인들의 다양한 장서표를 구경할 수 있어. 화려한 장서표들이 많지만 나는 찰스 디킨스의 담백한 장서표가 가장 마음에 들더라.
서양에서는 15세기 후반부터 장서표가 시작돼서 19세기 후반에 폭넓게 보급되었고, 주로 판화를 만들어 장서표를 찍었다고 해.2 그래서 정교하고 화려한 장서표가 많은 것 같아. 장서표에는 보통 ‘Ex-libris’라고 적혀 있는데, 이건 ‘…의 장서에서’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해.
《책 사냥꾼의 도서관》(#523)에서 봤듯이 당시에는 책이 귀한 물건이다보니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는 것이 중요했겠지. 또 위조를 막으려면 작품 수준에 가까운 완성도가 필요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어. 물론 미적인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
그런데 요즘 같이 책이 흔해진 시대에 장서표가 의미가 있을까? 집 책장에 꽂혀있을 책이라면 자신의 소유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잖아. 설사 도둑이 든다고 해도 누가 ‘책’을 훔쳐가겠어? 그렇다면 현대에 장서표는 책과 관련된 고급 취향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어. 그게 왜 ‘고급’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하고 싶은 말은 없지만 말이야.
이제 어떤 글과 그림을 담느냐만 남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