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읽은 책들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볼게.
《k-펑크》 1, 마크 피셔(지음), 박진철 외(옮김), 리시올, 2023.
내가 감상한 영화나 드라마(‘브레이킹 배드’, ‘배트맨’ 등)에 대한 비평은 읽어볼만 했어.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
이론적 바탕과 틀
관심사에 대한 집중력
관련 & 인접 분야에 대한 해박한, 정리한 지식
자신만의 관점을 통한 해석
자신만의 문체(스타일)
매체를 선택하는 감각과 활용하는 기술(이 책의 경우, 당시의 새로운 매체인 블로그)
성실성(잦은 글 공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흩어져 있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자료들을 하나의 주제 아래 종합하는 기술인 것 같아(연습하면 잘 할 수 있는 거니까 기술이 맞겠지? 타고난 능력 같은 거 아니고). 필요한 자료를 신중히 선택해서 잘 정리해놓고, 쓰려는 주제를 선택하고, 정리해 둔 아이디어와 자료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연결하고 해석해서, 자신의 문체로 글을 쓴 후, 최적의 매체를 통해 공개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제텔카스텐》의 영향 아닌가 싶네.
《제텔카스텐》(개정판), 숀케 아렌스(지음), 김수진(옮김), 인간희극, 2023.
이미 몇 번 읽은 책이어서, 이번에는 만들어 둔 카드를 재정리하는 것에 중점을 뒀어. 그 덕에 카드들 내용이 더 충실해 진 것 같네. 여러 번 읽어도 내용이 참 좋긴 해. ‘정리’에 대한 기술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쓰는 지적(知的) 활동을 어떻게하면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어서 말이야.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확실히 느낀 건데, 저자가 개념이 혼동되도록 쓴 부분이 있더라. 예를 들어, “유일하게 영구적으로 저장되는 메모는 서지정보 시스템 안의 문헌 메모와 메모 상자 안의 본(本) 메모다”(개정판 pp.83-84)라고 해놓고는, (문헌 메모는 빼고) 이 “본(本) 메모”의 이름만 영구보관용 메모(permanent notes)라고 한 것이라든가, “영구보관용 메모(permanent notes)는 … 서지정보 시스템이나 메모 상자에 저장한다”(pp.79)라고 해서 이번에는 문헌 메모와 영구보관용 메모를 같은 것으로 설명한다든가 하는 것들이야.
영구보관용 메모가 문헌 메모와 본 메모를 포함하는 것인기 싶다가도 이 과정을 보면 두 메모를 또 분명히 구분해 놨어. 차라리 ‘permanent notes’를 ‘main notes’라고 했으면 ‘본(本, main) 메모 상자’와도 일치하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원저자가 개정판을 내면서도 수정한 것이 없으니 본인은 혼동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네.
《문장의 맛》, 마크 포사이스(지음), 오수원(옮김), 비아북, 2023.
이 책의 목적은 지난 몇 세기 동안 내팽개쳐진 명확성과 지식을 복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몇 세기 전 구조 공학은 당장 잊어 버린 채, 우연이란 원칙을 바탕으로 건물을 짓기로 합의한 듯하다. 물론 과도하게 사용되거나 엉뚱한 장소와 시간에 사용된 수사법은 잘못이다. 하지만 잘 사용된 수사법은 언어를 아름답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글쓰기의 목적이 가능한 한 적은 단어를 사용하여 평범하고 간단한 언어로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황량하고 어리석은 생각은 떨쳐버렸으면 한다. 이는 허구, 실없는 소리, 오류, 환상, 거짓이다. 유용성만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유용성만을 위해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p.318)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 이 부분만 보면 저자가 굉장히 진지한 태도로 “수사학 중 작디작은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수사적 표현(figure of speech)을 다루고”(p.150)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수다’스러워. 마치 묻지도 않은 것을 몇십 분씩 혼자 떠드는 옆자리의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같다고 할까. 그래서 좀 불편해.
처음부터 예상하긴 했지만,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은 매우 커서 책에서 소개하는 표현의 (느낌상) 3분의 1, 많아 봐야 절반 정도나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싶었어. 그러나 읽고 이해하는 것과 실제 글을 쓸 때 적용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매우 커보이네.
그래서 이 책을 수사적 표현을 익히기 위한 교과서로 사용하기에는 저자가 내는 잡음(끊임없는 영어식 농담과 말장난)이 “과도하게 사용”되어서 방해가 되고, 차라리 셰익스피어 등 영문학의 거장들이 어떤 수사적 표현을 썼는지 알아보는 목적이라면 부담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번 주의 책’은 다시 욘 옐스터의 《마르크스 이해하기》 제2권의 제7장이야. 이제 다시 읽기를 시도할만한 ‘믿는 구석’이 생겼거든.😉
문장의 맛- 영어 못하는 저라도 어째선지 감탄하게 되는 문장들이 있어요. 그런 경우를 이해하는 데 도움될 듯해 (지난 번에 언급하셨을 때) 찾아봤는데 왠지 되게 어수선하더라구요. ;;
제텔카스텐은 이번 판도 손이 참 안 가는 표지지만;;
독서에 대해서, 글쓰기에 대해서, 참말로 치밀하고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는군!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을만큼의 경지를 향해~~ 전진하는 외계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