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번 주의 책’이 《마르크스 이해하기》였지(#491). 😮💨후. 그런데 일보후퇴하기로 했다. 마르크스의 저서는 《공산당 선언》 외에는 읽지 않았고, 관련 지식이 없다보니 좀 벅차네. 책의 처음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챕터만 따로 읽다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 책은, 다른 책들과 함께 시간을 갖고 읽으려고 해.
그래서 ‘이번 주의 책’은 상대적으로 빨리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것들도 골랐어.
1.
《k-펑크》 1, 마크 피셔(지음), 박진철 외(옮김), 리시올, 2023.
마크 피셔는 영국의 문화 연구자이자 비평가이자 작가야. ‘k-펑크’는 피셔가 2004년부터 2016까지 쓴 블로그의 이름인데, ‘k’는 (Korea가 아니라) 그가 속해있던 ‘사이버네틱 문화 연구회(Cybernetic Culture Research Unit, CCRU)’라는 이름 중 ‘Cybernetics’의 어원이 그리스어 퀴베르(kuber), 퀴베르네테스(κυβερνήτης: 키잡이, 조종사)이기 때문이라고 해.
k-펑크라는 명칭은 CCRU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k를 사용한 것은 캘리포니아와 《와이어드》에 포획된 ‘사이버’를 리비도적으로 더 낫게 대체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p.43)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 《와이어드》에 배신감과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눈에 걸리더라. 최근에 《사이버네틱스》도 번역돼 나왔는데, 무턱대고 샀다가 수학 공식으로 도배되어 있는 거 보고 식겁했네.
책 내용은 쉽지 않아. 서로의 문화도 다르고 깊이도 달라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진 않은데, 내 애초 목적이 책 전체를 이해하고 싶어서 산 것은 아니라서 뭐. 내가 궁금했던 건 나도 블로그를 열심히 썼던 시기에 영국의 문화 비평가/작가는 어떤 글을 블로그에 썼을까, 세계적으로 인기 있었고 나도 본 〈브레이킹 배드〉, 〈배트맨〉, 〈스타 워즈〉, 〈웨스트 월드〉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어떻게 비평했을까 같은 것들이야.
그가 자주 언급하기도 하고 이론적 기반인 것 같기도 한 보드리야르, 라캉, 지젝 등은 내가 모르기도 하고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철학자들이어서, 글의 구조나 전개 방식 같은 형식 위주로 읽고 있으니 금방 다 읽을 것 같네. 그런데 마크 피셔가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책은 꽤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더라.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자극 받은 것은 ‘(독서) 카드’를 많이 축적, 연결시켜놔야 겠다는 것. 그래야 필요할 때마다 이렇게 근거와 사례를 연결해서 자신의 논증을 전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어. 그리고 이번 주에 《제텔카스텐》의 개정판이 나왔지.
2.
《제텔카스텐》(개정판), 숀케 아렌스(지음), 김수진(옮김), 인간희극, 2023.
개정판에서 바뀐 점은 481호에서 언급했었지. 그런데 개정판 저자 서문이 한국어 개정판에는 없는 것 같네? 그게 있어야 뭐가 바뀌었는지 알 수 있는데 왜 빼놓은 건지 모르겠군.
이 책은 한국어 초판, 영어 개정판으로 세 번 이상 읽었는데,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겠지. 내가 아직 자신 없는 부분은 문헌 카드를 영구 카드로 질적인 변환을 하는 거야. 여전히 옮겨 적는 것에 안심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책의 그 부분만 다시 집중해서 읽어보려고 해.
3.
《문장의 맛》, 마크 포사이스(지음), 오수원(옮김), 비아북, 2023.
수사학이나 연설 관련 책이 나오면 저장해 두거나 사는 편인데, 이 책은 뭐랄까 학교 다닐 때, 시험 기간 전에 핵심만 요약해 둔 참고서나 문제집 사는 기분이었달까? 그래도 몇 천 년 전 학자들의 이론들 말고, 사십 대의 젊은 작가가 정리한 수사학 기술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어.
그러나 이런 영어권의 수사학 책을 보다보면 아쉬운 것은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같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야. 예를 들어, 운(韻, rhyme) 같은 것을 활용한다는지 하는 것들. 39개의 기술을 정리해놨다고 하는데, 이것대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면 한때 놀림거리였던, 외국물 먹은 것 티 내려는 재외교포의 어설픈 한국어 말투처럼 느껴지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되네.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요즘 장안의 화제인 이강룡님의 《우리가 읽고 쓰는 이유》를 읽고 써볼까 싶기도 한데, 아는 사람의 책에 대해 쓴다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 좀 주저하게 되네. 선생님께서 해설하고 계시니까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요즘 유일한 낙이 서울외계인 님 메일 읽는 거에요. 제텔카스텐 개정판 나온지도 몰랐어요. 팟캐스트 소개도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전자공학도입니다. 신기한 신간이 나왔네요? 좋아하던 교수님께서 "비너필터는 칼만필터로 사실상 대체되었지만, 칼만필터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비너필터로도 할 수 있다"며, 한 시간 동안 노버트 위너 찬양을 하신 적이 있었던게 기억에 나네요.
표지는 주파수분석과 autocorrelation이라 완전 전공서적인데 목차는 너무 일반적이랄까 다소 철학적인 것도 기묘하네요. 20세기 초까지 쏟아졌던 분야를 넘나드는 천재의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보면 될는지.
댓글란에서 글쓰기 셀럽들의 만남이 이뤄진거 보기 좋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