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가장 좋아하는 철이긴 하지만,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항상 있어서 너무 많은 비가 오진 않길 바란다. 내가 기억하는 장마철은 하나로 뭉개진다. 1995년의 장마, 2001년의 장마 그렇게 따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비를 간신히 참고 있는 듯 검게 흐린 하늘, 조심했지만 신발이 젖어 불은 발가락, 벽 어디선가 곰팡이가 피어오르려고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눅눅함, 여전히 돌아가는 일상과 물에 둘러쌓인 비일상의 뒤섞임에서 오는 가벼운 흥분 등으로 기억한다. 〈아비정전〉을 매년 한두 번은 꼭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말투를 보면 알겠지만 오늘은 책 얘기다.
시간의 차이가 큰 《리바이어던》 두 권
토마스 홉스의 오래된 펭귄 클래식 《리바이어던》 영어판을 선물 받았다. 1980년대에 출판된 것 같다. 이미 십년 전쯤 같은 펭귄 클래식 판을 산 것이 있다. 그래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봤는데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근 판이 글씨와 판형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마다 담긴 분량이 동일하고 그에 따라 두 책의 페이지 번호도 똑같다는 것이다. 그냥 책 크기만 키운 것이니까 당연한가 싶기도 하지만, 몇 년도에 나온 판이든지 이렇게 똑같이 유지한다면 내용을 인용할 때 문제가 생기지 않겠구나 싶었다.
이것도 당연하겠지만, ISBN 번호까지 똑같다! 0-14-043195-0와 0-140-43195-0.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책 특히 고전의 일관된 편집 형식을 유지해야 표준 저작 또는 최우선으로 인용하는 책이 될 수 있지 싶다. 오래된 《리바이어던》에서 초콜렛 향 같은 것이 난다.
물건+경성 =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내 ‘물건’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기의 ‘경성’에 대한 관심사가 결합된 책이 나왔다.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백 년 전 「데파-트」 각 층별 물품 내력과 근대의 풍경》, 최지혜(지음), 혜화1117, 2023.
식민지기 경성의 백화점을 대상으로 삼은 이 책은 그러나 백화점의 역사나 공간 혹은 산업적인 측면 대신, 각 층에서 팔았던 구체적인 물건들을 주로 살핀다. … 그때 그 시절 백화점에서는 어떤 물건을 팔았고, 그런 물건들은 언제부터 어디에서 들어와 어떻게 판매되었는지, 또 당시 사람들은 그런 물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 나는 백화점이라는 역사와 공간, 산업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의 크고 거시적인 이야기 대신 그 안에서 팔았던 온갖 물건들에 관한, 그 소소하고 자잘한 역사를 찾아보고 싶었다. …
이 책에서는 1920~30년대 경성의 여러 백화점에서 발행한 층별 안내도를 바탕으로 비슷한 점을 취합한 뒤, 백화점에서 팔았을 법한 물건들, 당시 신문과 잡지 등의 광고 지면 등에 활발하게 등장하던 물건들을 두루 포괄하여 각 층의 주요 물품들의 역사를 다루었다.
(pp.5-6)
서울공예박물관(#469)에서도 책의 주제와 관련된 전시품들을 봤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꽤 많은 상회와 백화점들이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궁금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었겠지.
책에는 앞에서 인용한 대로 층별 안내도, 광고 등의 시각 자료가 함께 실려있다. 이 당시에도 파카 듀오폴드, 워터맨 만년필을 광고하며 팔고 있었다니 신기하다. 국한문 혼용 광고도 있고 일본어 광고도 있는 것으로 봐서 구매층을 다르게 설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래 사진의 오른쪽 아래 광고는 〈조선신문〉에 실렸지만 일본어로 광고를 한 것이 의아하다. 그렇다면 일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광고인 것인가? 책을 읽어가며 답을 알 수 있길 바란다.
그냥 따사롭거나 선선한 정도가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다! 푹푹 찌거나 얼어붙으면, 장대비가 쏟아지거나 눈이 쌓이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잖아도 고된 일상이 살벌한 전투로 바뀌기 십상이지!
왜 인간은 가난을 가난으로만 기억하지 않고... 애달픈 마음 언저리에 두어야만 하는 것일까? 가난 그 자체는 슬픈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 쌀밥에 가끔 고깃국을 먹는 어느 가난한 사람에게... "사시사철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당신이 조선시대라면 큰 부자에 해당한다"라는 말은 아무런 위로를 주지 못한다. 맞는 말인데도 말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들의 호화생활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충만한 정신상태를 수련을 통해서 이룰 수 있을까? 나의 가난에 집중하는 대신, 나의 여유에 집중함으로써 가난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우주적 관점에서는 참 하찮게 보이는 인간의 소유욕이 실은 하찮은 것일까? 의미있는 것일까? 우리는 진정 어디로부터 생겨나서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