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전시와 도록
장인, 물건, 아날로그, 브랜드, 경영 등이 떠오른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서울공예박물관의 상설전시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를 보고 왔어. 코로나 방역 시기에는 예약을 해야만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네. 게다가 무료.
‘장인’의 의미,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것, 예술작품이 아닌 생활 속 물건, 한 생애를 통해 기술뿐만이 아니라 함께 전수되는 뭔가가 있다는 점, 경영과 운영의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 등 평소의 궁금증과 연결되는 면이 있어서 가보게 됐어. 물론 집에서 가까워서인 것도 있음.🥹
일단, 전시는 매우 훌륭해. 기회가 되면 관람해 보는 걸 추천해. 바로 옆 전시실에서 진행중인 〈나전장의 도안실: 그림으로 보는 나전〉(7월 23일까지)까지 함께 보면 더 만족스러운 관람이 될거야.
전시를 보며 대단한 유물, 작품들이 많아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나중에 도록(뒤에서 좀 더 얘기)을 사고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 그래도 몇 가지만 소개하면,

순금에 보물의 기가 어려
반달 모양으로 새긴 노리개를 만들었다네
시집올 때 시어른들이 주시니
붉은 비단 치마에 달고 다녔지
오늘 길 떠나는 그대에게 드리오니
부디 그대여 여러 패물들 중 하나로 여겨
길에 버리셔도 아깝지 않으나
새 여인 허리띠에만은 맺어주지 마세요
— 난설헌 허초희, 《난설재집蘭雪齋集》 중

두 전시를 다 보고 ‘박물관가게’에서 전시 도록과 기념품 하나(참새, 방앗간 방문)를 샀는데, 지금 ‘2023 공예주간’이라고 50% 할인 받았어.🤭
집에 와서 도록을 넘겨 보니 내가 지금까지 본 도록 중에 가장 훌륭하더라. 유물, 작품들의 도판(사진)이 모두 340개나 실려 있어. 사진도 사진이지만, 전시에는 간략히 붙어있던 설명들이 도록에는 충분히 실려있다보니 작품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해소할 수 있겠어.
서울공예박물관 유튜브 채널에 이 전시를 소개한 ‘온라인 전시투어’도 있어.
그리고, 전시품 중에 ‘계영배戒盈杯’라는 특이한 잔이 있었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차는 것을 경계하는 술잔’으로 “사이펀의 원리가 적용되어 술잔이 가득차면 관을 통해 잔 받침으로 흘러내”린다고 해. 술욕심에 너무 가득 채우면 술잔이 비어버리는 거지. 관련 영상도 있어.
그리고, 《하재일기》라는, “조선 왕실에 도자기를 납품하던 분원공소分院貢所의 공인貢人이었던 지규식池圭植이 1891년부터 1911년까지 약 20년 7개월 동안 쓴 일기” 중 한 구절이 기억에 남더라.
내가 종일토록 (나인에게) 애걸하였으나 도무지 들어주지 않고 기어코 며칠 안으로 (그릇을) 바치라고 하니, 나는 몹시 분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자와 칼날을 쥔 자의 형편이 같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 《하재일기》 1891년 11월 9일









허난설헌의 시, 하재일기에 명품들까지 잘 보았네!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가구나 도구들을 볼 때도 그렇고, 흙집이나 초가집을 볼 때도 그렇고, 나는 살아보지도 않고 사용해보지도 않았지만, 꼭 살아봤었고 사용해봤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저 깊숙한 기억 어딘가에서 어떤 장면이 떠오를 듯 말 듯... 하면서, 내게 전생이 있었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