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배달 온 〈시사IN〉 제815호 표지 사진에 임영웅이 있었어. 중장년층 이상에게 대단한 인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트로트에 대한 편견이 있고(지금은 좀 약해진 것 같다) 임영웅이 데뷔한 그 프로그램을 방영한 종편TV를 혐오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한 게 사실이야.
그러나 중장년층이 신예 트로트 가수들에 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아이돌 팬덤 못지 않은 조직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이전과는 뭔가 다른 것이 있구나라는 생각은 했어.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자신의 가수에 대해 고백하는 그들의 애정은 방향과 깊이가 달랐어.
““사는 게 행복하더라” 임영웅을 사랑하는 이들” 기사를 보고 임영웅 팬덤의 성격을 조금 알 수 있었어. 인상 깊었던 내용을 인용해 보면,
팔순을 앞둔 오영희씨는 개의치 않았다. “죽기 전에 영웅이 만난 게 얼마나 감사한지. 여든 넘으면 죽어야지 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 아흔 넘도록 살아야 해. 임영웅이 내 생명을 연장해준 거나 다름없어.” 코로나19로 남편을 떠나보낸 후론 좋아하던 노래를 거의 듣지 않았는데 임영웅 노래는 유독 듣고 싶어지는 게 신기했다.
다음 팬카페 ‘영웅시대’ 회원 수는 18만9000여 명. 팬층은 남녀노소를 불문하지만 팬덤을 주도하는 건 50~70대 여성이다.
팬카페에는 임영웅 노래를 들으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이 사라졌다는 후기들이 종종 올라왔다.
상당수의 트로트가 남자다움을 강조하거나 남자의 순정을 주로 담아냈다. ⋯ 그에 비해 임영웅의 트로트는 남성성을 전복한다. ⋯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고맙다고 표현하며 행복의 눈물마저 흘리는 남성을 만날 수 있다.”
“제가 쓸모있는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여기서 느껴요.”
달라진 모습을 보며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임영웅이 엄마를 살렸네.” 황방순씨는 이렇게 답했다. “사는 게 행복하더라.”
가수 한 명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나도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이런 경험은 해보지 못해서 불행하다는 생각까지 드네.
그리고 “수영장 할머니들의 걱정 "나도 잘리면 어떡해"“라는 또 다른 기사가 내 시선을 끌었는데,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치매로 인해 잊혀지고 배제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야.
셔틀버스 안이 웅성거린다. 평소와 달리 잡담 분위기가 아니다. 노인 한 명이 119에 실려 갔다고 한다. 쓰러져서. 수중걷기하던 노인인데, 담당자가 더이상 수영장에 나오지 말라 했다고 한다. 어쩐지 오늘 안 보였다. 노인은 타인의 옷을 입고 벗었다가 들키기도 했고 버스 운행 중에 이동해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노인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치매라는 것. 노인은 수중걷기 할 때 손을 앞으로 길게 뻗어 휘저으며 다녔다. 좀 독특하다 싶었는데 치매였다니. "수영장 오는게 낙일 텐데" 하면서 노인들은 안타까워했다.
"나도 잘리면 어떡해" 걱정하는 노인도 있었다. 시력이 안 좋아 다른 사람 옷을 착각했을 텐데 그런 이유로 잘리다니. 사람들은 그 노인이 매일 앉던 맨 앞 좌석 빈자리를 보며 허전해했다. 남 일이 아니라며.
이 노인들에게 🏊수영은 부상 걱정없는 유일한 건강유지 수단이자, 또래를 만날 수 있는 경로당 역할이자,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해주는 루틴 역할일 수 있는데, “나도 잘리면 어떡해”라는 말이 비참하게 느껴졌어.
늙더라도 존중 받고, 치매 같은 불운이 닥치더라도 보호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작년 하반기에 사회복지사 실습하러 치매노인기관으로 갔어요. <눈이 부시게> 같은 미디어로나 접했던 분들을 처음 겪으면서 여러모로 복잡했죠. 지금까지도 그래요. 아무튼, 그때 같이 일하던 실습생 덕에 임영웅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제가 생각하던 트로트랑 달라서 놀라기도 했어요. '그냥 발라든데?' 이런 느낌? 더 찾아 듣거나 하진 않았지만... 굉장하네요.
어렸을 때 산울림, 들국화, 김현식, 디퍼플, 퀸, 뉴트롤즈, 비틀즈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저리곤 했었지...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아리면서 환상같은 미래를 꿈꾸기도 하고 허무함에 마음아프기도 했지!
지금도 어쩌다 음악을 들으면 고요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살짝 설레기도 하지만... 밀린 교재작업과 사소한 일상이 너무 쉽게 분위기를 바꿔버리곤 해. 음악이 내안에 또 하나의 우주를 만들던 그시절의 나는 누구일까? 인간은 시시각각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일까? 새롭게 태어나는 것일까? 죽기 전에 이미 수도없이 죽어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