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인적으로 번역하는 게 있는데 초벌 번역을 딥엘(DeepL, 433호 참고)을 이용해서 하고 있어. 말했듯이, 지금까지의 번역 서비스들과는 질적인 차이가 느껴져.
그렇다면 번역의 최전선에 있는 실제 번역가들은 ‘특이점’이 온 AI 번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조선일보(이 매체는 웬만하면 인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렇게 불가피한 경우가 있네. 불쾌감을 느낀 분이 있다면 양해 부탁드려요)에서 유명 번역가들에게, AI가 번역가를 대체할 수 있을지 질문을 했어.
기사에서 노승영씨 외에는 모두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분들이어서 균형 있는 의견 또는 예측이라고 보기는 힘들어.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노승영씨가 상황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과학서 전문 번역가 노승영(50)씨는 “이미 AI 때문에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독자들이 AI와 인간의 섬세한 차이를 모르거나 가치를 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전자책 원서를 빨리 읽을 수 있도록 AI가 번역해 주는 서비스 같은 것이 나오면 독자들은 속도가 빠른 그쪽을 택할 것 같다”고 했다. 책 한 권 번역하는 데 보통 5개월~1년이 소요되는데 그 시간을 줄일 수 있고, 특히 과학서는 정형화된 서술 방식이 있어 AI 번역 친화적인 텍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내 경험에 비추어 속도를 대략 예상해보면, 400페이지 분량의 영어판 책이 있다고 했을 때 딥엘 같은 AI 번역을 이용하면 초벌 번역을 반나절 정도면 충분히 내놓을 수 있을 거야.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이라고 하더라도 스캔해서 OCR로 디지털화하는 것은 금방이니까.
문학 “작품 특유의 문체, 저자의 에너지와 호흡 전달이 더 중요”하고 “AI 번역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번역을 잘하려면 책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데 AI엔 ‘마음’이 없지 않은가”라는 말에는 이질감이 느껴지네. AI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이 있는데? 문학이라는 세계와 그 세계를 번역한다는 행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으니까 하는 말일 거라고 이해해.
공통적인 것은 역시 “번역가의 노력이 이전보다 더 많이 요구”될 것이고, “결국 장인 정신을 가진 번역가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의견이야. 그렇다면 번역 ‘시장’은 지금보다 축소될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러나 만약 AI를 이용해 초벌 번역을 하고 그 초벌에 이른바 ‘휴먼 터치’를 더하거나 퇴고를 통해 “‘고품질’ 결과물”을 내놓으면서도 매우 빠른 속도의 작업을 하는 번역가들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번역서는 사기 전에 번역자의 프로필도 살펴 보는 편인데, 이런 류의 책을 번역하는데 이런 고학력까지 필요한가 싶을 정도의 분들이 많아. 그만큼 한국 번역가의 층이 두터운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런 분들이라면 닥쳐온 AI 시대에 새로운 길을 모색해서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하게 돼.
결국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저자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언어들의 차이에 다리를 놔주면서도 잘 읽히는, 책임 있는 번역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우리에게는 좋은 번역서들이 여전히, 더 많이, 계속 필요할테니까.
저도 개인적인 초벌에 꽤 이용하고 있어요. 휴먼이 기획하고 챗GPT가 저술(...)했다는 책(...)이 나오는 상황에 비추어 보며 무척 놀라기도 하고요. 휴먼이 사전의 1번 풀이만으로 작업한 걸 번역이라고 갖다준 원고를 "휴먼 터치"하느라 고생했던 때가 문득 떠오르네요.
어쨌든 이런 기술들이 빨리 많이 발전하는 게 '독서소외인'( https://www.law.go.kr/%EB%B2%95%EB%A0%B9/%EB%8F%85%EC%84%9C%EB%AC%B8%ED%99%94%EC%A7%84%ED%9D%A5%EB%B2%95 제2조 3.)에겐 참 좋을 것 같아요.
세상의 큰 흐름을 특정 개인들이 거스르기는 힘들어보여요! 제가 생계를 유지하는 공무원학원 시장도 불과 5~6년 전에 비해서 수험생 숫자가 50% 이상 사라져버렸어요! 너무 급격하게 사회구조가 변화하고 있어서 개인들이 적응하기 힘든 것 같아요! 큰 흐름은 어쩔 수 없더라도, 이런 현상을 조금 빨리 예상하고 연착륙을 기획하는 정치가와 공무원들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