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었어. 제주도에 여행이 아닌, 볼일이 있어 갔었는데 시간이 좀 남아 카페에 들어가 앉았어. 잠시 후, 옆자리에 검은 상복을 입은 몇 분이 앉았어. 어쩔 수 없이(?)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한국말이 약간 부자연스럽고, 간간이 일본말이 들리더라고. 어떤 경우에 이런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고 경우의 수를 몇 개 떠올려 봤지.
한국인과 재일교포 또는 일본인이 결혼했는데, 집안의 어른이 돌아가셔서 한국에 온 건가? 재일교포 또는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살다가 돌아가신 건가? 그래서 친지들이 온건가? 등등.
나중에 알게 된 또다른 경우의 수 하나는 제주4·3사건 때 일본, 특히 오사카 지역으로 몸을 피한 분들이 많았다는 거야. 그런데 일시적인 피난이 아니라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계속 살게 된 거지. 그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어.
평소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특히 한국 근현대사는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보니, 시간적으로 제일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더 무지해.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말에는 근현대사를 찾아 본다는 것에는 뭔가 ‘불온한’ 느낌이 있었어. 제주4·3사건, 여수·순천 사건, 광주민주화운동 등 명칭도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대학에나 가서야 선배들에게 단편적으로 듣게 된 거지.
435호에서 얘기했던 〈매불쇼〉에 한국사에 대한 시간이 있는데, 최근에 다룬 주제가 제주4·3사건이야. 이걸 들으며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2. 통제불능 역사 강사 “항의만 하지 말고 공부를 해라!”
패널로 나온 배기성 역사 강사란 분의 실력은 의심할 필요 없을 것 같고, 누구처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현대사의 모순에 대해 분노하는 게 느껴져. 썸네일은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아. 당시 세계사적, 지정학적 맥락 위에서 4·3이 일어나게 된 이유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으니, 보시길 추천.
일단 제주4·3평화재단 웹사이트에 들어가 아래의 공식 자료들을 받았어.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 I
제주4·3바로알기
4·3이 머우꽈
한눈에 보는 4·3
그리고, 최근 출간된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라는 책을 샀어. 저자인 허호준 기자는 지난 30년 동안 4·3을 취재해 온 사람이라고 해. 먼저 사실 기반으로 이 사건에 대해 알아야할 것 같아서 골랐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또는 안다고 생각했으나 어렴풋했던 4·3의 실체를 정확하게 담기 위해 4·3의 시대적 배경, 그 원인, 진행 과정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책이다. 이로써 이미 지나버린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4·3의 진상, 현대 한국사에서 4·3이 차지하는 의미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물론, 4·3을 단지 제주 지역, 나아가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아가 세계사 안에서 냉전 체제의 산물로 바라보는 인식의 확장 역시 이 책의 존재 이유다. (책소개 중)
특별법을 제정하고 국가가 참여하여 조사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3에 대한 공식적인 규정은 이거야.
제주4·3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최근 이런 공식적인 조사와 규정마저도 부정하는 무리들이 준동하고 있다 하더군. 어떤 근거나 자료도 없이, 가짜 주장과 선동에 기대서 말이야.
정치적 입장의 심각한 차이 때문에 반목하는 일 많지. 가족들과 그러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사실 정치적 입장 때문에 그 사람이 싫어지기보다는, 그 사람의 심각한 확증편향, 인지부조화가 더 실망스러워서 싫어지는 편이야.
당연히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지만, 자기가 틀린 것은 없는지 반복적으로 성찰하는 태도, 틀린 것이 발견되면 교정하려는 의지 등이 없이 통쾌한 감정만을 찾는 사람, 자기의 이익에 맞게 왜곡하는 사람. 그러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구나하고 한심하게 여겨지는 거지.
그렇습니다.
너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숨졌습니다! 너무 큰 시대의 아픔이고,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비극입니다!
저도 매불쇼를 즐겨보는데 어젯밤 잠들기 전에 말씀하신 클립을 보고 정말.. 속이 아팠습니다. 얼굴이 벌개져서 부들부들 떨며 열변을 토하는 배기성님의 울분에 더 부끄러워졌지요. 그래서 김득중 교수의 논문을 찾아보자 메모를 해뒀었는데, 이런 글이라니! 저도 책을 사고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공부밖엔 답이 없는 것 같아요. 뚜렷한 역사와 저의 무지에 속이 더운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