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을 이해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바람은 여전해서 《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이란 책을 읽었다(책에 대한 글은 단순함을 위해 평서문으로 쓰겠음).
《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들》, 수지 호지(지음), 이지원(옮김), 마로니에북스, 2022.
결론: 이 책 덕분에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해 가졌던 편견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매몰되어 감상자에 대한 고려도, 의미 있는 메시지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그들도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사실 내 편견은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을 보여주는 미술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다. 묘사된 대상이 사실적으로 보일 때, 우리는 작가가 기술적으로 숙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미술은 변했고, 현재 생산되는 많은 작품은 우리가 알아볼 만한 것들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오늘날 미술 작품은 곧잘 추하거나 충격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지저분하거나 투박하며, 또 전혀 예상치 못한 재료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모두는 적잖은 당황과 좌절,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 미술은 언제, 그리고 왜 변했을까? 변해도 된다고 결정한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떤 일들이 그런 변화를 촉발했을까? 현대 미술과 동시대 미술(modern and contemporary art)은 어째서 죄다 이해하기 어려울까? 실은 그저 헛소리일 뿐이고, 작가들이 우리를 비웃는 것인가? 그리고 사실적인 게 뭐가 잘못이라는 것일까?
(p.6)
저자는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간파하고 있는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런 모든 문제를 탐구하고자, 이 책은 미술계를 강타하고 미술사의 경로를 바꾼 1850년대 이후 생산된 혁신적인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킨 몇몇 작가들을 짚어가며 그들이 어째서 그런 일을 했고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왜 중요했는지 밝힌다. 또한 그들이 작업하는 동안 그 주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미술이 왜, 어떤 식으로 문화 전반에 지속해서 큰 영향을 미치는지 살핀다. 미술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몇몇 작품을 조영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이 책은 무엇이 왜 어디서 어떻게 언제 미술사를 변화시켰는지 알아본다.
(p.6)
실제 책은 이 개요로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다.
시대를 구분해(전통의 타파: 1850~1909, 전쟁의 참상: 1910~1926, 갈등과 퇴조: 1927~1955, 상업주의와 저항: 1956~1989, 프레임 너머로: 1990~현재) 해당 시대의 예술적 특징을 설명하고, “미술은 언제나 그것이 속한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저자의 지론대로,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을 연대기표 형식으로 함께 보여줌으로써 예술과 현실의 연결고리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고, 해당 시대에 활동한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설명한 후, 짚고 넘어가야 할 특징이나 사건을 추가적으로 서술하는 식이다.
책은 귀스타브 쿠르베의 〈목욕하는 사람들The Bathers〉(1853)로 시작해서,
뱅크시의 〈사랑은 쓰레기통 속에서Love is in the Bin〉(2018)로 끝난다.
인상 깊었던 작품과 설명 하나만 꼽는다면, 타니아 브루게라의 〈타틀린의 속삭임 5 Tatlin’s Whisper #5〉이다.
퍼포먼스를 위해 제복 차림의 런던 시경 소속 기마경찰 두 명이 각각 백마와 흑마를 타고 테이트 모던의 커다란 터빈 홀에 도착했다. 그들은 말 위에 올라탄 채로 현장을 돌며 때마침 그곳에 있던 갤러리 방문객들을 이끌고 통제했다. 그들은 경찰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여섯 가지 군중 통제술을 이용했는데, 이는 갤러리 입구 봉쇄하기, 말을 옆으로 움직여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기, 사람들을 모두 한 무리로 모은 다음 주위를 돌면서 바짝 붙여 세우기, 말의 덩치와 높이를 이용해 대응하기, 한 무리를 둘로 나누기 등의 조치였다. … 갤러리 방문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퍼포먼스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었다. …
그녀가 기획한 대로, 부르게라는 이 퍼포먼스를 통해 권위를 가진 자와 그들이 제어하려는 대중 사이의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탐구했다. 또한 응시하는 위치에 있을 때와 응시당하는 위치에 있을 때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폈다. 권위주의적 통제를 미술관 안으로 들여옴으로써, 그녀는 안전한 공간이 얼마나 쉽게 위협적이거나 적대적이거나 심지어 위험한 곳으로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탐구했다.
(pp.188-189)
미술, 특히 현대 미술은 작품 해석을 도와주는 평론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에 대한 당시 평론가들의 비평을 보면 작가의 의도,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본인의 미학적 가치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감정적인 비난에 몰두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면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수지 호지의 이 책 덕분에 현대 미술에 대한 오해는 대부분 해소되었다. 이 신뢰감을 바탕으로 그녀의 다른 책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 《디테일로 보는 서양미술》도 읽어보려고 한다.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행동으로 느껴지네! 대단하시네!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의 경우 특히 어떤 편견이 저도 있었는데 ... 소개해주신 이 책 좋아 보이네요. 목차 보니 현대미술이 강조된 제목은 좀 의아하지만.
편견이 됐든 개인적인 원칙이 됐든 어떤 면에선 결국 저만 손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인 것 같아 좀 벗어나 보려고 하는데 완전 잘 안 돼요.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는 꼭 책 이야기에만 해당되지 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