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휴가를 틈타, 내가 의무감 없이 즐겁게 만들 수 있는 게 뭔가 생각을 해봤어. 머리띠를 두르고 책상에 바로 앉아 각잡고 고민…한 건 아니지만, 이거구나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잖아. 공부는 내 지식과 영적 성장을 위해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다보니 의무감이 있을 수밖에 없어. 공부를 하며 가슴 깊은 곳에서 느끼는 희열이 있지만 이건 사실 매우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그 기쁨을 공유할 수 있을까, 공유할만 한 것인가, 공유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 그러나 그 공유의 중간 매개 같은 것이라면?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비단 위에 꽃을 더하는 것 아닐까? 그 결론은 ‘문구’였지.
문구애호가, ’문구인’(文具人)들은 전세계적으로 엄청 많아. 평생의 직업을 문구와 관련된 일로 선택한 이들도 있고, 불확실한 미래지만 문구숍을 창업해 생활과 사랑을 이어나가는 이들도 국내에 많이 있어. 인스타그램에서 잠깐만 검색해봐도 각종 문구, 노트, 다이어리 쓰기와 꾸미기 등 관련 ‘문화’와 ‘쇼핑’ 카테고리의 계정들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고 수준도 상당해. 나도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있지.
그렇다고 문구의 범위를 무한정 확대해서 다루고 싶진 않아. 기본적으로는 공부와 관련된 문구들, 옛날로 따지면 ‘문방사우’(文房四友) — 종이, 붓, 먹, 벼루가 되겠지. 이걸 현대 문구에 대응해보면 뭐가 될까 생각해봤는데 종이는 노트나 다이어리, 붓은 연필, 만년필 등을 포함한 각종 펜들, 먹은 잉크 정도가 되겠는데 나머지 이 ‘벼루’는 뭐에 대응시켜야 할지 모르겠네. 그렇다고 잘 안 쓰는 잉크웰(224호 참고)은 아닌 것 같고, 꼭 옛날 벼루의 용도가 아니더라도 현대에서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아이디어 있는 분은 좀 주세요).
현재 내 아이디어에 가장 가까운 모델은 ‘펜애딕트’(The Pen Addict) 모델인데, 기본 컨텐츠에 더하여 유료 회원들에게 뉴스레터와 팟캐스트를 제공하고 있어. 그리고 문구 전문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하는 영감을 주고 있는, 얼마 전 서브스택에 합류한 오스틴 클레온(Austin Kleon)도 또 다른 모델이고. 그 외에도 많지만 집중을 위해 일단 이 정도만 머리 속에 담아두기로 했어.
인간의 정신을 물질화한 도구, 그리고 다시 인간의 정신을 외화(外化)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구 — 그것이 바로 문구, 라고 정리해 봅니다.
외계인님은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하거나 사용할 때의 기쁜 마음을 오래 간직하나 봅니다. 저는 그런 기억이 왜 떠오르지 않을까요? 분명 있었을텐데 말이죠. 아마도 큰 기쁨으로 와닿지 않았거나, 금방 잊어먹었거나 둘 중의 하나겠죠. 무생물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매일 뉴스레터가 잘오길래 이상한점을 발견못했는데.. 사이트(?)를 옮기셨더군요 로그인이 안되서..ㅎㅎ 문구류 기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