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내드리는 레터는 〈노상기록〉 40호(2025.7.7)에 실린 글입니다.
폭염이 계속 되고 있네요. 특히 실외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노상기록〉 35호(2025.6.23)에 썼던 《팔레스타인》은 해당 출판사에서 "《쥐》, 《페르세폴리스》와 함께 그래픽노블 3대작"이라고 홍보한다. 혹시 공식적으로 선정한 근거 자료가 있는지 문의해보니 "관행적인 분류"라고 한다.
이번에 읽은 《오키나와》 역시 (다른) 해당 출판사에서도 '《쥐》, 《페르세폴리스》를 잇는 걸작 논픽션'이라고 홍보하는 것을 보니 어떤 작품이 "그래픽노블 3대작"의 세 번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쥐》와 《페르세폴리스》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작인 것만은 분명한가보다.
최근에 읽은 그래픽노블들 — 《대만의 소년》, 《팔레스타인》, 《오키나와》 — 은 모두 전쟁과 식민지화의 과정과 결과에 관해 그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세 책을 '식민지 그래픽노블 3대작'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오키나와》, 히가 스스무(지음), 김웅기(옮김), 서해문집, 2025
이 책은 저자 히가 스스무의 《모래의 검》과 《마부이》를 엮은 영문판 《오키나와》의 한국어판이다. 《모래의 검》은 태평양 전쟁 막바지의 오키나와, 《마부이》는 전쟁 후의 오키나와를 그리고 있는데, 어떤 편은 실화를 바탕으로, 어떤 편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었다.
대뜸 떠오른 책은 미즈키 시게루가 본인의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전원 옥쇄하라!》1이다. 당시 일본 군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어떤 것'이 사람을 얼마나 잔인하게 만드는지, 자국민들의 생명까지 얼마나 가차없이 다뤘는지를 경악하며 읽었었다.
내 짧은 식견으로, 오키나와는 일본 본섬과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많이 다르고, 일본에 주둔한 미군 기지가 대부분 오키나와에 있고(약 70%), 미군 기지 철수를 위해 시민단체들이 노력하고 있고, 온화한 기후와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한국인들도 여행을 많이 가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저자 히가 스스무(1953~)는 오키나와에서 태어나 계속 오키나와에서 살고 있다. 그는 오키나와의 역사, 문화, 풍습, 갈등, 전망 등을 다양한 시간적 배경과 관점(등장인물)으로 전달하고 있다. 오키나와를 여행 후보지 정도로만 생각하던 나 같은 사람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만큼 훌륭하다.
〈학교〉 편에서는 1609년경 오키나와 류큐국의 대응을 담은 《평정록》(平定錄)의 기록이 등장한다. 내용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는) 일본과는 사뭇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었다.
“도요토미 정권 시절, 우린 조선 출병을 거부했다. 여러 이웃 나라와 교역하며 공존, 공영, 우호를 다질 수 있음을 증명해왔다. 이런 역사의 자부심이 무력 외교를 용납하지 않았다. 도쿠가와 체제에 편입된다 해도, 우리의 해외 교역 정신은 굳이 해외에 출병하지 않아도 되는 체제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전쟁을 불러들이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223)
물론 일본에게 여러 차례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당한 우리로서는, 적극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그 전쟁들에 동조한 일본 국민(이 작품에 등장하는 오키나와 일부 주민들을 포함하여)을 관대하게 볼 수만은 없다. 양국의 역사적 교착 관계를 풀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일본의 진정한 사과뿐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으니 가슴 한편은 항상 개운치 않다.
'식민지 그래픽노블 3대작'을 읽고나니,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식민지 또는 한 국가의 내부 식민지를 없애나가려는 노력 없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른 생명을 착취함으로써 불사(不死)의 꿈에서 깨지 않으려는 것은 인간 동물의 본성인 것일까.
옥쇄玉碎: "부서져 옥이 된다는 뜻으로, 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이 죽음을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