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이런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저는 이들[고소인들]로 해서 제가 누구인지를 저 자신조차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하였는데, 이토록 이들은 설득력 있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진실이라고는 거의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 맹세코, 여러분께선 이들의 경우처럼 미사여구(美辭麗句)의 연설도, 정연한 연설도 저한테서는 듣지 못하시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낱말들로 되는 대로 말하게 되는 걸 들으시게 될 겁니다. 이는 제가 말하는 것들이 올바른 것들이라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는 어느 누구도 달리 기대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여러분! 이 나이에, 마치 철부지처럼 말을 꾸며대면서 여러분 앞에 선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겠기에 말씀입니다." (17a-c)
— 박종현 역주, 《소크라테스의 변론》 (2013)
자신은 연설 또는 수사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플라톤의 저작들이 모두 대화로 이루어진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서양 문화는 일방적 소통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1고 테드 지오이아는 지적합니다.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말하고 나머지는 듣기만" 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제 그 문화가 변화하고 있고, 사람들은 수평적인 대화를 원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정치인, 방송인, 그리고 모든 전문가 지망생, 의사결정자, 지도자들을 위한 여섯 가지 새로운 소통 규칙"을 제안합니다.
서 있을 때보다 앉아 있을 때 더 많은 신뢰를 얻습니다
사람들에게(at) 말하지 말고, 사람들과(with) 말하세요
이제는 격식 없는 어조가 더 설득력 있습니다. 지도자들도 이에 적응해야 합니다
연설보다 대화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팀이나 연설문 작성자가 만든 대본보다 개인적 관점에서 전달되는 즉흥적인 소통이 더 '진정성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운드바이트와 논점보다 스토리텔링, 유머, 즉석 발언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동감하면서,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한국의 문화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 한국인들도 대부분의 '권위'를 부정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권위가 증발한 자리에 상호이해를 목표로 하는 '대화'가 자리잡았을까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스타일처럼 느껴지는 저 여섯 개 규칙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을까요?
제가 공교육을 거치면서 대화하는 방법 같은 걸 배운 기억은 없는 것 같네요. 그 시절의 학교에서 (민주적, 평화적, 수평적, 신수사학적 대화든 뭐든) 대화 방법을 가르치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그런 대화를 하지 않았고 그런 관계도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선생님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만.
수사학과 연설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자주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는 이 이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하는 겁니다. 원론적으로는,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고 그 설득을 효과적으로 해내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설득'은 이제 일방향으로는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파토스(대중의 감정을 사용)를 통해서 에토스(발화자의 개인적 성격)를 형성해야 한다고 할까요. 더 어려운 것은, 모든 것의 권위가 사라지고 상대적인 것으로 변해버린 지금 대중, 게다가 감정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떤 것이죠.
앞에서 인용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곱씹어봤습니다. 다시 말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보니, 소크라테스는 저 발언을 통해 거짓 대 진실의 이분법적 구조를 만들고 변론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 언변에 능숙한 자는 거짓을 말함 vs. 언변에 능숙하지 못한 자(자신)는 진실을 말함
반수사학적 비난을 통해 파토스를 움직여 '진실을 말하는 자'라는 자신의 에토스를 만들어내려는 소크라테스의 수사학적 전략이라고 할까요. 역설적이죠.
아마도 지금 현대인에게 필요한 수사학 기술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저 "그때그때 생각나는 낱말들로 되는 대로 말하"면서도 올바른 것을 말하는 (또는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능력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경지’에는 어떻게 가닿을 수 있는 걸까요? 새로운 수사학적 숙제가 생겨버렸습니다.
Ted Gioia, 'The 6 New Rules of Communicating' (2024.11.16). 이하 모두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