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책, 잘못된 논증》의 이해를 위해서는 《국가》, 《리바이어던》, 《공산당 선언》은 물론이고, 저자가 언급하는 언어행위이론에 관한 지식도 필요했습니다. 이 이론 덕분에 세 고전들은 편견과 잘못된 사실로 이루어진 고서(古書)들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고전으로 알려진 많은 책들이 지금 관점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논증을 펼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들이 고전에서 배제되지 않고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저는 이 언어행위이론을 통해 고전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해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학에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언어는 단지 참과 거짓만을 말하고 따지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 이론을 더 공부해보려고 해요.
언어행위(화행)이론의 대표 학자로 J. L. 오스틴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대표 저작 《말과 행위》(How to do Things with Words)가 한국어판으로 오래전에 나와있습니다.
《말과 행위: 오스틴의 언어철학, 의미론, 화용론》, J. L. 오스틴(지음), 김영진(옮김), 서광사, 2005
일단 시작을 위해 이 이론의 핵심 개념들을 정리했습니다. 용어는 번역한 사람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데, 이 책이 한국에 번역된 J. L. 오스틴의 유일한 저서로 보이기 때문에 이 책의 번역을 따랐습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이론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천천히 읽으면 무슨 말인지 알겠더군요.
보기 편하게, 링크한 지식정원 페이지와 같은 내용을 옮겨두겠습니다.
발화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실제로 행위를 수행할 수 있음을 논의하는 책
언어철학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만든 중요한 저작
이 과정에서 "언어행위이론"(Speech Act Theory, 화행이론)을 발전시킴
말이 어떻게 현실 세계에서 실질적인 행동이나 변화를 유발하는지 설명하고자 했음
현대 언어철학의 흐름을 새롭게 정의하며, "언어는 행동이다"라는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한 중요한 저작
핵심 개념
1. 진위문(Constative)과 수행문(Performative)
언어를 진위문과 수행문으로 구분함
진위문(眞僞文, constative)
단순히 사실을 설명하거나 서술하는 말
진리값(참/거짓)이 있음
예를 들어 "오늘은 비가 온다"라는 문장은 사실에 대해 참(true)이거나 거짓(false)일 수 있음
수행문(修行文, performative)
단순한 사실 서술이 아닌,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 말
예를 들어, "나는 결혼식을 선언합니다" 또는 "나는 약속합니다" 같은 문장은 그 자체가 행위(즉, 결혼을 선언하거나 약속하는 행위)를 수행함
이런 문장은 진리값(참/거짓)으로 평가될 수 없음
잘못된 상황에서 사용되거나 적절하지 않게 사용되었을 때는 "부적절"하거나 "실패"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음
오스틴은 이후 진위적 발화와 수행적 발화의 구분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모든 발화가 일정한 정도에서 수행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결론 내림
이로써 수행적 발화가 사실 특정한 종류의 발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발화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함
2. 언어적 행위의 세 가지 차원
모든 발화가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봤음
발화행위(locutionary act)
단순히 문법적으로 완전한 문장을 말하는 행위
발화의 문자적 의미를 포함함
예를 들어 "내일은 비가 올 거야"라는 발화에서, 이 문장이 그 자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것임
음성행위(phonetic act), 형태행위(phatic act), 의미행위(rhetic act)
발화수반행위(illocutionary act)
발화가 갖는 의도나 목적을 의미함
즉, 말하는 사람이 그 말을 통해 수행하고자 하는 행위
예를 들어, "내일 비가 올 거야"라는 말은 단순한 정보 전달일 수 있지만, 때로는 상대방에게 우산을 챙기라는 조언이나 간접적인 명령으로 이해될 수 있음
발화적 행위는 의도된 행위로, 발화자가 청자에게 특정한 의도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여기에 포함됨
판정발화(verdictives), 행사발화(exercitives), 언약발화(commissives), 평서발화(expositives), 행태발화(behabitives)
발화효과행위(perlocutionary act)
발화가 청자에게 실제로 미치는 효과나 결과
청자가 그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관한 부분
"내일 비가 올 거야"라는 말을 들은 청자가 우산을 챙기거나 외출 계획을 바꾼다면, 이는 발화 후 행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임
3. 부적절 행위(Infelicities)
발화가 실패할 수 있는 상황을 정의했음
발화는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의도한 행위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음
이를 "부적절행위"(infelicities) 라고 불렀음
예를 들어, 결혼식을 주례하는 사람이 법적으로 결혼을 선언할 권한이 없다면, 그 사람의 "나는 당신들을 부부로 선언합니다"라는 발화는 실패한 발화임
이런 상황에서 발화는 적절한 맥락이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발화의 실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뉨
불발행위(misfires)
발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규칙이나 맥락을 충족시키지 못한 경우
예를 들어, 결혼을 선언할 권한이 없는 사람이 결혼을 선언하면 이는 규약적 실패임
남용행위(abuses)
발화자는 발화의 규칙을 충족하지만, 의도적으로 거짓이거나 악의적인 의도로 발화를 사용하는 경우
예를 들어, 의도적으로 잘못된 약속을 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경우가 해당됨
오스틴의 기여
J. L. 오스틴의 《말과 행위》는 언어가 단순한 진술의 도구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줌
이로써 언어는 물리적 행동 못지않게 중요한 사회적 행동으로 인식되었음
이는 후에 존 서얼(John Searle)의 언어적 행위 이론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
이 이론은 법학, 언어학, 심리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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