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G. 런시먼이 2010년에 출간한 《Great Books, Bad Argument》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제 1장 '도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몇 년 전 철학자 마일즈 버니엇과 대화를 나누면서 플라톤의 《국가》와 같은 책이,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수많은 논증들이 그렇게 나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대로 존경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대답은 제가 요점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플라톤의 영향력은 그가 독자들이 숙고하기를 바라는 지속적인 관심사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제시하는 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후 영국 아카데미에서 열린 플라톤에 대한 “거장의 정신(Master-Mind)” 강의에서 그가 말했듯이, 플라톤의 주석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그의 글을 마치 학교 시험처럼 평가하는 것입니다("플라톤, 당신은 10점 만점에 4점을 받았으니 다음에는 더 잘해봐요”). 하지만 왜 안 될까요? 《국가》에는 서로 다른, 그리고 종종 수수께끼 같은 종류의 논증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 어떤 이들은 뒤죽박죽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진지한 사람이라면, 그가 확실히 그렇듯이, 그는 자신이 확고하게 믿는 특정 명제가 참이라고 독자들을 설득하고 싶어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다양한 비유, 직유, 은유, 신화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책을 훨씬 더 읽기 쉽게 만들더라도, 그것들이 지지하고자 하는 명제가 기껏해야 믿을 수 없고 최악의 경우 명백히 거짓이라면 그 목적은 실패한 것입니다.
이 책은 이렇게 "도발적"이며 "물을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 질문의 대상은 인류의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는 세 책: 플라톤의 《국가》, 홉스의 《리바이어던》,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입니다.
W. G. Runciman, 《Great Books, Bad Arguments: Republic, Leviathan and The Communist Manifesto》,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이 책을 수년 전에 선생님께서 저에게 번역해보라고 하셨고 우여곡절 끝에 번역을 마쳤습니다. 144페이지 밖에 안 되는 책인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앞으로 이 책을 매주 한 번 글과 팟캐스트를 이용해 해설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건 구독자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해요. 누군가에게 설명이나 강의를 해봐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의 질문들이 이 "위대한 책들"의 명성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 책들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낯선 시선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질문들이 이 책들의 위대함을 재확인시켜 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연재는 매회 책의 적합한 분량을 요약·정리한 내용과 약 20분 정도의 팟캐스트(오디오)로 구성됩니다. 제가 이 뉴스레터를 만들고 있는 서브스택은 팟캐스트도 함께 지원하고 있어서 기존처럼 이메일을 통해 읽고 들으시면 됩니다.
이 책의 도발적인 질문처럼 구독자 여러분들의 ‘도발적인’ 댓글을 통한 토론도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말이 144쪽이지 번역하려니 14400쪽만 했을 듯요. 기대합니다.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