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자기계발서를 추천해보라고 하면 이 두 권만 읽으면 된다고 할 생각입니다. 게다가 그 중 한 권은 중년을 위한 책이므로, 아직 중년이 아니라면 한 권만 권합니다.
《4000주》는 뉴스레터 431호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요. 당시는 노트 정리가 완전하지 않아서 간단한 소개만 했었죠. 생각난 김에 정리를 마쳤고, 내용에 다시 깊이 동감했네요.
《4000주: 영원히 살 수 없는 우리 모두를 위한 시간 관리법》, 올리버 버크먼(지음), 이윤진(옮김), 21세기북스, 2022
어려서부터 꽤 많은 자기계발서를 사고 읽었어요. 그 동기와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는 살아온 시간 동안의 기억이 뒤엉켜 있어서 분명히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네요. 덩어리 채 본다면, 돈보다는 명예에 대한 욕심이 컸고, 명예를 얻으면 돈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한 분야의 독창적인 전문가가 됨으로써 그 명예를 얻으려고 했고, 작은 성공들을 이루면서 "그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었죠.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명예라고 생각한 그것은 사실 '배타적이며 독점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통해 얻는 지위 또는 권력’을 의미했던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남들이 안 하는 것, 모르는 것,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것 등을 이용해 얻는 이익 말이죠.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했던 게 이건가?' 자문하게 만들더군요.
이제 현실을 마주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계획을 이뤘는가? 돈과 명예라는 이익에 한정한다면 그럴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지만 '현재'로 한번 더 좁힌다면 여전히 "실존적 압도감"에 짓눌려 있어요. 지금도 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의 완수는 쳇바퀴 위에서 내 꼬리를 쫓듯 잡히지 않습니다.
《4000주》는 이 고민들에 직접적인 도움을 줍니다. 애초에 시작이 잘못 된 거에요. 실현할 수 없는 환상을 만들어놓고 그걸 이루려는 노력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4000주 밖에 주어지지 않은 현실을 무시하게 만드니까요.
우리는 직업적으로 성공을 하고 부모이자 배우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는 동시에 마라톤 연습이나 명상 수련에 전념하거나 지역 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삶에 대한 환상을 갖기 쉽다. 상상 속에서는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완벽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삶들 중 어느 하나라도 선택해서 실제로 살기 시작하는 순간, 다른 일 때문에 한 가지 일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못하는 등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또한 모든 일들이 생각처럼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고, 그 결과 실제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 《4000주》, '시간에 관한 현실과 상상' 중
그렇다면 이 책은 '현재에 충실하라'라든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같은 뻔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어요. 만약 그랬다면 저부터 읽다 말고 분리수거함에 던져버렸을 거에요.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려는 노력이 지금까지 계속 비판했던 도구주의적 사고방식이나 미래지향적 사고방식과 정반대로 보이지만 사실 그것의 약간 다른 버전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풍요로운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라는 점이 다를 뿐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집착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 결과 지금 이 순간의 경험 자체가 희미해진다. 마치 너무 잠들려고 애쓴 나머지 잠들지 못하는 것과 같다. ... 너무 열심히 '그 순간 더 많은 것'을 얻으려 노력할 때 자의식은 우리가 스스로 정신적으로 고양되어 그 순간 시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현재에 존재하려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 위의 책,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중
자기계발서의 대표적 고전이 된 캐롤 드웩의 《마인드셋》의 핵심 개념은 다들 알다시피 '고정 마인드셋'과 '성장 마인드셋'입니다. 성장 마인드셋의 긍정적 효과가 있겠죠. 성장 마인드셋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부하고 노력했다는 것에 저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고 있구요.
그런데 이제는 거부감이 생겨요. 이 책을 읽은 지 너무 오래돼서 내용 확인을 위해 다시 읽어볼 생각도 있지만, 실존적 압도감을 가중시키는 이 '성장 마인드셋'은 미국주의1의 심리학적 축소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유한함 속에서도 무한히 자유로운 미래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환상으로 가는 다리가 불타 없어지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막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 다리를 태우고 나면 대부분은 자기 앞에 놓인 유한함에 대해 만족한다.
— 위의 책, '나의 선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법' 중
수많은, 특히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 '석학'들의 자기계발서는 종종 사이비 종교적 열광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출판사들도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 등의 브랜드를 중요한 광고 요소로 활용하죠.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를 환상으로 끌고가는 덫과 함정입니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계 최고의 대학 출신이 쓴 이 책 정도는 읽어야 한다고, 읽지 않으면 너는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속삭이면서 말입니다.
《4000주》는 그 어두운 환상들을 환한 햇빛 아래로 끌어올리는 책입니다. 최소한 나의 “거대자신감”만을 부추기는 자기계발서들을 읽기 전 백신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입니다.
※ 요즘 제가 원래 쓰던 반말투에서 높임말투로 바꾼 것을 궁금해하는 분이 계셔서 말씀드리자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니 반말보다 높임말이 다양한 표현을 쓰기에 더 좋아서 바꾸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표현의 반말을 쓰려면 가끔 ‘거친 표현’도 하고 그래야하는데 다양한 구독자분들이 계시니 그건 좀 힘들겠죠? 😃
월터 J.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2018) 중 '미국주의의 지적 기원'(p.15) 참고.
오오오!!! 4000주 원픽 입니다. 애쓰지 않는 애씀. 방법 아닌 방법. 그저 삶을 사는 것. 자기계발의 영성. 신간은 실습편이랄까. 조만간 번역되어 나올듯.
이른 새벽 이 글보고 얼굴이 확 피어납니다. 감사합니다.
40,000주라...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 좀 해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