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기 누난의 《이렇게 스피치는 시작된다》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이 책은 "글쓰기와 연설에 관한 조언과 개인적인 경험을 쓴 책"이고, "오직 말만으로 공개석상에서 의사소통을 해야할 때 효과적인 것과 어떤 것을 해서는 안 되는가" 하는 것을 알려주고, "공개적인 연설을 요청받거나 연설을 생각하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에요.
당연한 얘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깊이 와닿은 것은 "스피치는 정보와 의견을 종이에 적어서 말로 풀어내는 것"이라는 규정입니다. 일단 글로 잘 써야해요. 이건 절대적인 기본 조건입니다. 연설문은 대충 써놓고 순발력과 '말빨'로 때우면 망한 연설이 되는 거죠.
《이렇게 스피치는 시작된다: 미국 대통령 스피치라이터의 연설 전략》, 페기 누난(지음), 정수열(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On Speaking Well (1998)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책 내용은 허세 따위 없이 기본에 충실하며 실용적입니다. 연설 작성에 필요한 준비는 이 책으로 시작해도 충분하겠어요.
다만 대부분의 사례가 영어권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밀한 한국어 연설 사례들을 발굴해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가깝게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들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합니다.
이 책은 이론적인 설명을 배제했어요. '수사학'만 나오면 등장하는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마저도 등장하지 않아요. 그러나 용어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들에 대한 내용은 풍부합니다.
저자가 미국 공화당 소속 대통령들의 스피치라이터였기 때문에 민주당 소속 대통령들에게는 평가가 박한 편이에요. 사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연설을 잘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네요. 영어판이 1998년에 나왔기 때문에 연설 잘하기로 유명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관한 내용은 없어요. 만약 오바마 이후에 이 책을 썼다면 어떤 내용이 됐을지 궁금하네요.
“연설은 마법처럼 특별한 것이 아니다. … 스피치는 정보와 의견을 종이에 적어서 말로 풀어내는 것이다. 당신이 사려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그 내용을 글로 써서 의미 있는 연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대통령 취임사는 그 시대의 역사 인식과 진실을 자리매김하거나 규정하는 기회"1라고 보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당시 취임식 영상을 함께 봤어요.
🎤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취임사 — 국난극복과 재도약의 새시대를 엽시다 (1998.2.25)
연설은 분명한 역사적 규정과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정부수립 50년만에 처음 이루어진 여야간 정권교체
역시 처음으로 실현된 민주적 정권교체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려는 정부
이 정부는 '국민의 정부'
군부 또는 그와 영합한 세력들인 이전 정권들과 차별화하여 민주적 정권이라는 정통성을 확인하고,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사상에만 치우친 정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죠.
형식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설의 주제를 전환할 때는 국민을 호명(총 7번)해서 주의를 집중시킨 후 새로운 주제를 말하기 시작한다는 거에요. 연설문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어요.
연설의 시작과 끝에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연설의 중간에는 "친애하는/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큰 정책이 없는 스피치는 큰 스피치가 아니"2라고 봤을 때, 이 취임사는 국가 운영 전반에 걸친 큰 정책들을 비전과 함께 제시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며 “의미”가 공유됩니다.
정보화혁명 대비
외환위기 극복
정치개혁
경제
물가 안정
경쟁의 원리
기술강국
벤처기업
대기업 5대 개혁
외국자본 투자유치
농업 중시와 쌀 자급자족
정신 혁명
소외된 노인, 장애인 지원
교육개혁
민족문화 세계화
중산층 안정
여성 권익보장과 능력개발
청년 지원
외교
안보
남북관계
3원칙
해외동포 유대 강화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연설을 잘 했던 것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여러 명연설들이 있지만 다음으로 읽어보고 싶은 연설은, 김대중 대통령이 1980년 3월에 사면복권 된 후 서울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에서 진행한 9년 만의 대중연설입니다.
🎤 '민족혼과 더불어' YWCA 초청 김대중 연설문 (1980.3.26)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비극적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죠.
위의 책, p.95
위의 책,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