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에 동네 독서실에 다녔는데,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어. 가는 길에 두 평도 안 되는 작은 레코드숍이 하나 있었고, 공부하면서 들을 카세트 테이프를 여기서 주로 샀지. 피곤한 수험생 시절의 낙이었어. 주인 누나가 예쁘기도 했고.😌
그때가 아마 ‘동아기획’의 전성기였을 거야. 한영애, 박학기, 장필순, 오석준, 신촌블루스 많이 들었지. 그 나이 때는 온몸을 열고 땀구멍으로까지 음악을 듣잖아. 지금도 한영애의 ‘여울목’ 전주가 시작되니 명치와 뇌가 연결되네.
정말 공부에 집중하려면 음악을 듣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믿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러고 있어. 잘했지? 아니, 이런 대단한 음악들이 있는데 어떻게 안 들을 수가 있었겠어.
장필순의 목소리가 워낙 특별해서인지 그의 많은 곡들은 악기 편성을 최소한으로 한 것 같아. 음 하나 하나를 차곡차곡 정성껏 쌓아올리면서 소리를 낸다는 느낌. 요즘 노래들처럼 귀에 맴도는 절정만을 위해서 앞과 뒤는 버려지는 느낌이 아니라.
박학기의 테이프도 늘어지게 들었는데, 대히트곡인 1집의 ‘향기로운 추억’은 시작부터 내 반경 100미터 내의 풍경을 바꾸는 효과를 가졌지. 지금도 여전하네. 생경한 음색의 목소리라 더 신비롭게 느껴졌던 것 같아.
한국 음악을 들으며 가장 경이롭게 느꼈던 목소리를 꼽으라면 신촌블루스 1집의 ‘봄비’를 부른 박인수였어. 소울인지 블루스인지 뭔지도 모를 때 ‘노래를 이렇게 부를 수도 있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좋지?’ 그런 감상이었어. 당시에는 그런 느낌을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했는데 지금도 잘 모르겠네.
1970년에는 어떻게 부르셨는지.
내일 봄비가 왔으면 좋겠다.
오호~~ 온몸을 열고 땀구멍으로까지 음악을 들었다는 표현에 절대공감하네요. 한영애의 여울목 들으면서 고등학생 때에, 군대 휴가나와서, 시험떨어진 날 밤에, 방황하던 어느 날들에 많이 울었어요! 가슴이 저리는... 애닲은 노래죠! 아! 외계인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