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꼭 읽어보고 싶은 고전 문학 작품이 (현재로서는) 세 개가 있어. 《마의 산》,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나마 셋 중에 분량이 제일 적고 난이도가 낮은 《마의 산》을 우선 매일 아침 읽기 시작했고, 《율리시스》는 최근에 이종일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나와서 살펴보고 있어. 출판사의 책소개를 보면,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율리시스》는 독자들이 완독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기존 번역본들의 방대한 주석에 짓눌려 중도에 독서를 포기하기 십상이었다. 이에 문학동네판 《율리시스》는 꼭 필요한 주석만을 엄선하여 소설의 흐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주석은 면주로, 작품의 배경 이해에 도움을 주는 주석은 미주로 처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완독률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예술적 깊이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으로 고전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율리시스》가 정밀하고 유려하며 가독성이 향상된 새로운 번역을 통해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존 김종건 번역판과 비교해보니 이종일 번역판은 현대적 어휘와 문체로 번역해서 더 잘 읽히더라. 김종건 번역판은 초판, 개역판, 3개역판, 4개역판에 걸쳐 나왔지만, 초판 번역이 1968년에 나온 탓인지 4개역판(2016)에도 여전히 옛스러운 어휘와 문체가 많아서 읽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
한 번 비교해 보자. 제1장의 처음 일부를 옮겨봤어.
김종건 번역판 (미주 6개)
* 당당하고, 통통한 벅 멀리건이 거울과 면도칼이 그 위에 엇갈려 놓여있는 면도 물종지를 들고, 층층대 꼭대기에서 나왔다. 노란 화장 복이, 띠가 풀린 채, 온화한 아침 공기를 타고 그의 뒤에 사뿐히 매달려 있었다. 그는 종지를 높이 치켜들고, 읊조렸다:
— '인뜨로이보 아드 알따레 데이(나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가련다)'
발걸음을 멈춘 채, 그는 컴컴한 나선형의 층층대를 내려다보며, 거칠게 불러냈다:
— 올라 와, 킨치! 올라와, 이 겁쟁이 제주이트 교도!
엄숙하게 그는 앞으로 나아가 둥근 포상(砲床)에 올랐다. 그는 사방을 휘둘러보며, 탑, 둘러싸고 있는 땅 그리고 깨나고 있는 산들에게 정중하게 세 번 축복을 빌었다. 그런 다음, 스티븐 데덜러스의 모습이 언뜻 눈에 띠자, 그는 그에게로 몸을 굽히고, 목구멍을 가르랑대며, 머리를 흔들면서, 공중에다 재빠른 성호(聖號)를 그었다. 스티븐 데덜러스는, 그를 축복하는, 흔들고 그르렁대는 말(馬)같은 기다란 얼굴을, 그리고 창백한 참나무 결과 색깔을 띤, 환하고 체발(剃髮)하지 않은 머리카락을, 기분이 언짢고 잠에 어린 채, 층층대 꼭대기에다 양팔을 괴고, 냉정하게 쳐다보았다.
이종일 번역판 (각주 1개, 미주 1개)
* 당당하고 통통한 벅 멀리건이 계단 꼭대기에서 나오는데, 손에 든 비누거품 사발에는 거울과 면도칼이 열십자 꼴로 놓여 있었다. 포근한 아침 바람에 허리띠가 풀린 노란 실내복이 그의 몸 뒤로 헐겁게 걸쳐져 있었다. 그는 사발을 높이 치켜들고 읊조렸다.
— 인트로이보 아드 알타레 데이.
그는 걸음을 멈추고, 어두운 나선형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스럽게 소리쳤다.
— 올라와라, 킨치! 올라오란 말이야, 이 겁쟁이 예수회 교도야!
그는 엄숙하게 앞으로 걸어가 둥근 포대砲臺 위에 올라섰다. 그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탑과 주변의 땅과 잠에서 깨어나는 산들에 대고 장중하게 세 차례의 축복을 보냈다. 그러다가 스티븐 데덜러스가 눈에 들어오자 그쪽으로 몸을 돌려 허공에 십자성호를 잽싸게 그으며, 목구멍을 꼴꼴대고 머리를 흔들었다. 기분이 상한데다 졸리기까지 한 스티븐 데덜러스가 양팔을 계단 꼭대기에 기댄 채 냉랭하게 바라보니, 말처럼 길쭉한 얼굴은 축복을 보내느라 흔들리며 꼴꼴거리고, 삭발하지 않고 텁수룩한 밝은색 머리칼은 옅은 참나무 색깔을 띠었다.
영문 (주석 없음)
STATELY, plump Buck Mulligan came from the stairhead, bearing a bowl of lather on which a mirror and a razor lay crossed. A yellow dressing-gown, ungirdled, was sustained gently behind him by the mild morning air. He held the bowl aloft and intoned:
— Introibo ad altare Dei.
Halted, he peered down the dark winding stairs and called up coarsely:
— Come up, Kinch. Come up, you fearful jesuit.
Solemnly he came forward and mounted the round gunrest. He faced about and blessed gravely thrice the tower, the surrounding country and the awaking moun-tains. Then, catching sight of Stephen Dedalus, he bent towards him and made rapid crosses in the air, gurgling in his throat and shaking his head. Stephen Dedalus, displeased and sleepy, leaned his arms on the top of the staircase and looked coldly at the shaking gurgling face that blessed him, equine in its length, and at the light untonsured hair, grained and hued like pale oak.
참고로 이종일 번역판 제1장은 전체 미주가 반 페이지에 4개인 반면, 김종건 번역판은 12페이지에 걸쳐 모두 153개가 있어. 이것만 봐도 각 번역판이 무엇에 중점을 뒀는지 알 수 있겠어.
번역의 완성도나 학문적 가치의 측면에서 어떤 번역판이 더 나은지 판단할 능력이 나한테는 없기 때문에, 어떤 번역이 더 읽기 좋은지를 기준으로 선택하려고 해. 그 가독성 때문에 희생된 것이 있다 해도 그것 때문에 안 읽는 것보다는 완독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야. 그래서 소설 본문은 이종일 번역판으로 읽되, 중간중간 김종건 번역판의 주석을 참고하려고 해.
가끔 《율리시스》를 뒤적이며 드문드문 읽다보면 ‘읽기’라는 게 낯설게 느껴져. 나와는 별 상관도 없는 시대의 아일랜드인 소설가가 쓴, 고전으로 추앙받는, 어렵게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일 뿐이지만 그래서 더 집착하는 것 같아. 언어의 신비란.
저도 율리시즈는... 예전에 시도해보고 포기......
마의 산은 오래전에 읽었는데 두꺼운 흰색 표지의 두 권 짜리였는데 지금 찾아보니 신원문화사라는 출판사네. 그러나 율리시스는 여러 번 중도에 포기, 심지어 어린이용도 읽어봤는데 포기.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는 가끔 마음을 먹지만 1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그만 스완네 집을 탈출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