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이 익숙했던 유행어는 1970년대 한 영양제 광고 문구였다고 하지. 사실 아이들을 낳았을 때 떠오르는 생각은 이거 비슷했어. 커서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대단한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보다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한 인간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지.
아이가 커가면서 이 마음을 지키는 건 힘들더라. 학교에 들어가면 한글도 잘 읽었으면 좋겠고, 구구단도 빨리 외웠으면 좋겠고, 그림도 잘 그렸으면 좋겠고, 친구도 많았으면 좋겠고, 남들보다 잘하는 게 많았으면 좋겠고 이것저것 조금씩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지. 잘하는 게 생기면 뿌듯하고 부족한 게 보이면 속상해하고 말이야.
내가 크면서 느낀 아쉬움이나 부족함을 내 자식이 또 겪게 하고 싶지 않은 게 부모 마음이겠지. 그렇다고 부모가 대신 해주거나 강요하면 아이를 망치게 된다는 두려움이 함께 있고. 그 선을 찾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 강요와 방치 사이 어디쯤에 있는 희미한 경계선.
첫째아이가 고3이다보니 내년 1월은 치열한 한달이 될 것 같아. 실기 준비 때문에 밤낮으로 학원에서 지내는 아이를 보면 짠한 마음도 들고 그러네.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는 몰랐는데, 내가 경제적인 능력이 좋으면 이런 입시 같은 것 때문에 마음고생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마치 아무 준비도 안된 자식에게 가게 차려주는 부모들처럼 말이야.😨
한국의 대학들에 아무런 기대가 없기 때문에, 아이가 대학에 가지 않아도 크게 실망은 안 할 것 같아. 오히려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지. 다만 그 길이 너무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거야. 더 나은 걸 얻으려면 더 힘들 수밖에 없을테니까 말이야.
이런 생각들을 하고, 어렸을 때 사진들을 보며 아이를 낳았을 때의 초심을 떠올려보게 됐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사는 것 이상으로 아이에게 욕심 내지 않고, 격려가 필요할 때 질책하지 않고, 충고가 필요할 때 갈등을 피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어.
이제 두 아이 모두, 부모가 자기의 정체성을 조금이라도 흔드는 일이 있으면 발끈하는 나이가 되었지. 결국 믿고 지켜보며 욕심 없이 사랑하고 자주 안아주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 그런데 이제 안으려고 하면 잽싸게 도망가거나 쏙쏙 잘도 빠져나가니 쉽지 않네. 아빠는 안고 싶다.🦦
거래를 하면 됩니다. ㅎ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아이들이 많이 컸지만, 얼굴만 봐도 참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이들만 생각하면 평화롭고 살기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요? 걱정도 많이 듭니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그러다가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저를 바라보시던 그 눈빛이 바로 그것이었겠지요! 야속한 세월이지만, 항상 용기를 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