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는 우연히 한 부고 기사를 보았다. 권위 있는 제임스 조이스 연구자이자 《율리시스》, 《피네간의 경야》의 번역자로 잘 알려진 김종건 교수의 부고였다. 잘 모르는 분이지만 그의 노고로 만들어 낸 책을 통해 인연이 닿았기에 명복을 빌어본다. 그리고, 이제 《율리시스》의 번역은 누가 이어갈까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율리시스》와 《피네간의 경야》1는 모두 가지고 있고, 《율리시스》는 책상에 앉아 손이 닿는 곳에 꽂아두었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 매번, 이번엔 다 읽어야지하고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읽으려고 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율리시스》에 대한 만사의 관심이 커진 것은, 공교롭게도 최근 읽은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었던 탓이 크다. 《문예 비창작》에서는 《율리시스》 ‘이타카’ 에피소드에서 물의 속성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언급했는데, 궁금해서 찾아 읽어보고는 경이로운 느낌마저 들어서 옮겨 적어놨었다.
물을 사랑하는 자, 물을 긷는 자, 물을 나르는 자인, 블룸은, 스토브로 돌아오면서, 물의 어떠한 속성(屬性)에 대해 감탄했는가?
그것의 보편성을, 그것의 민주적 평등성 및 스스로의 수평면을 견지하려는 천성(天性)에 대한 일정불변성(一定不變性)을. 메르카토르 식 투영도에 의한 대양(大洋)에 있어서 그것의 확대성을. 태평양 순다 해구(海溝)의 8천 길이 넘는 거의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이를. 해안의 모든 지점을 순차적으로 방문하는 그것의 파도 및 수면의 미립자의 끊임없는 운동을. 그것의 구성 요소의 독립성을. 바다의 여러 가지 상태의 변이성(變異性)을. 평온 시에 있어서의 정수학적(靜水學的) 정지성(靜止性)을. 소조(小潮)시에 있어서의 유체동력적(流體動力的) 팽창성을. 파괴 후의 그것의 진정성(鎭靜性)을. 북극 및 남극의, 만년설(萬年雪) 얼음으로 덮인 원형극지(圓型極地)의 불모성(不毛性)을. 그것의 기후 상 및 무역상의 의의를. 지구상에서 욕지에 대한 3대 1의 우위성을. 아열대 남회귀선 이남의 전 지역에 걸친 평방해리(平方海里)에 뻗어 있는 그것의 논란불가(論難不可)의 패권성(覇權性)을. 그것의 원시적 해분(海盆)의 수천 년에 걸친 부동성(不動性)을. 그것의 진한 주황색 해저(海底)를. 수백만 톤의 귀금속을 포함하는 여러 가용성(可溶性) 물질을 분해하여 그 용해 상태를 보전하는 그것의 능력을. 반도(半島)와 도서(島嶼), 토양 동질 도서, 반도의 영속적 형성 그리고 침강(沈降) 상태의 곶에 끼치는 완만한 침식성(浸蝕性)을. 그것의 충적층(沖積層)을. 그것의 중량, 용적 및 밀도(密度)를. 산호도(珊瑚島) 중 호수 및 고지산(高地山) 중 호수에 있어서의 그것의 부동성을. 열대, 온대, 한대에 있어서의 그것의 색채의 변화를. 대륙호(大陸湖)에 이르는 시내 및 여러 기류(氣流)를 합하여 흐르는 강들 그리고 대양을 횡단하는 해류에 있어서의 그것의 수송분기로(輸送分技路), 적도하(赤道下)의 남북 코스를 달리는 만류(灣流)를. 해진(海震), 용오름, 자연수(自然水)의 우물, 분출(噴出), 급류, 회오리, 홍수, 출수(出水), 해저, 우물, 분수계(分水界), 분수선(分水線), 간헐온천(間歇溫泉), 폭포, 소용돌이, 화방수, 범람, 대홍수, 호우에 있어서의 그것의 맹위성(猛威性)을. 지구를 선회하는 그것의 광대한 수평적 곡선을, 샘의 비밀, 막대 점(點), 또는 습도측정기에 의해 나타나며, 애쉬타운 게이트의 벽혈(壁穴)에 의해 증명되는 잠재적 습기, 즉 대기의 포화(飽和), 이슬의 증류성을. 수소 2원자(原子), 산소 1원자에 의한 그것의 구성상의 단순성을. 그것의 치료적인 효능성을. 사해(死海)의 물 속에 있어서의 그것의 부력(浮力)을. 실개울, 계곡, 불완전한 댐, 갑판 위의 물새는 구멍에 있어서의 그것의 끈기 있는 침투성을. 청소용, 갈증완화용(渴症緩和用), 소화용, 야채류 재배용의 그것의 특성을. 범례(凡例) 및 전형(典型)이 되는 그것의 절대 확실성을. 증기, 안개, 구름, 비, 진눈깨비, 눈, 우박이 되는 그것의 변질성을. 딱딱한 수화물(水化物)에 있어서의 그것의 압력을, 호수, 강, 포(浦), 소해협, 산호도 중 호수, 환초(環礁), 다도해(多島海), 환상제도(環狀諸島), 협만, 포곡(浦曲), 사주(砂州) 및 내해(內海)에 있어서의 그것의 형태 변화의 다양성을. 빙하, 빙산, 부빙(浮氷)에 있어서의 그것의 고체성을 수차(水車), 터빈, 발동기, 발전소, 표백 공장, 무두질 공장, 타면(打綿) 공장을 움직이게 하는 그것의 순응성(順應性)을, 운하, 항해 가능한 하천, 물에 떠 있는 도크 및 건조(乾燥) 도크에 있어서의 그것의 유용성(有用性)을. 낙하하는 조수(潮水)의 동력화 또는 수로의 낙차에서 얻어지는 그것의 잡채력을. 숫자상으로, 반드시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구상의 생물과 대등한(무청각성[無聽覺性], 혐광성[嫌光性]) 해저 동물군(群) 및 식물군을. 인체의 90퍼센트를 점령하고 있는 그것의 편재성(偏在性)을. 소택지(沼澤地), 페스트를 낳게 하는 습지, 썩은 꽃물, 달이 이지러질 시기의 침체된 연못 속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그것의 유독성을.
(pp.549-550)
만사가 이 책을 읽고 싶어하는 것은 잘난 척하기 위해서일까, 지적 허영 때문일까, 문학 고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작품의 “마(魔)”적임에 끌리는 것일까, 읽지 않으면 세계 현대문학을 알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다 읽고 만다는 오기 때문일까?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죽기 전에는 다 읽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책 뒤에 실린 이야기 줄거리를 읽고나니 이 책과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구나’와 함께 ‘왜 이런 이야기를?’이 함께 떠올랐다. 완독하는 것과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얘기일 터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끝나지 않는 수수께끼를 마주하는 기분일 것 같다. 흥미진진해진다.
※ 이 글은 〈만사씨 표류기〉 12월 5일자 뉴스레터입니다.
“고인은 2002년 《피네간의 경야》를 한국어로 번역했는데, 이 책이 외국어로 번역된 건 세계에서 네번째였다”고 한다.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요즘 부쩍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네요! 멋진 인생... 쓸쓸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