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대입 수시 원서접수가 시작됐어. 첫째아이가 고3인지라 옆에서 온라인 원서접수를 도와주며 느낀 건, 세상 정말 편해졌다는 거야. 온라인 원서접수 사이트에 공통원서를 하나 작성해두면 어느 대학에 지원하든지 다시 작성할 필요가 없더라고. 지원하는 학과 입력, 전형료 납입 정도만 각 대학별로 하면 되고.
나 때는 말이야…🥸 다 발품, 손품이었지 뭐. 그때 기억을 떠올리다 고등학교 시절의 몇 가지 기억이 함께 따라왔는데 다 안 좋은 것들이네. 그 중 하나가 폭력적인 (선생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은) 교사에 대한 것인데, 본인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애들을 때리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한 사람이야.
이런 식이었지. (별로 들을 것도 없는) 수업을 하다가 눈에 거슬리는 학생 한 명을 찍어서 아주 사소한 것을 빌미로 시비를 걸기 시작해. 그 학생이 말대꾸나 반항을 하는 것도 아니야. 그런데 그 교사 혼자 계속 언성이 높아지면서 화를 ‘자가발전’하기 시작해. 그러고는 학생을 앞으로 불러내서 ‘폭행’을 시작하지. 그 교사가 덩치도 꽤 컸었는데 크게 다치겠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게 때렸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때리고 난 후에 문제가 안 생길 것 같은 애들만 골라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 아무리 폭력이 만연한 시절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반복적으로 학생을 무참히 폭행하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교사 생활을 계속 한 것을 보면 말이야. 몇 십 년이 흐른 후 우연히 듣게 된 바로는 나중에 교감인지 교장이 되었다고 하던데, 지금쯤은 정년퇴임 했겠지. 내가 직접 맞은 적은 없지만 지금이라도 만나면 얼굴에 쌍욕을 퍼부어 주고 싶은 인간이야. 그러고 보면 한 인간에 대한 증오가 참 오래 가네.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음 속에 가장 따뜻하게 남아있는 선생님 중 한 분은 중3 담임 선생님이셔. 무표정하게 계시면 좀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풍류를 즐기는 분이었지. 화가가 아니셨나 싶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셨고, 깔끔하게 도표를 그리고 문서를 정리하는 것에 반 아이들이 재미를 들일 정도로 신묘한 요령들을 많이 가르쳐 주셨어. 그리고 그야말로 줄담배를 피셨는데, 기다란 ‘장미’ 담배를 수업할 때 외에는 손에서 놓질 않으셨어.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한 건, 그런 선생님께서 우리 졸업식 날 아이처럼 펑펑 우셨다는 거야. 반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며 멋적게 웃었지. 그도 그럴 것이 일년 동안 뭔가 눈치챌 수 있는 것 전혀 없이 쿨하면서 재밌는 선생님이셨으니까 말이야. 과연 선생님을 울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우리를 가르치셨길래 이별의 순간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을까? 궁금하더라.
이렇게 따뜻하게 기억되는 선생님들과 연락을 이어가며 삶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아니, 그저 살아오신 얘기라도 가끔 들었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이제서야 뒤늦게 들곤 해. 어린 나이에는 선생님이란 존재는 어렵고 부담스러워서 벗어나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네. 그 선생님께서는 지금은 돌아가셨겠지.
학교의 선생님과 (‘제자’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학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던 것 같아. 권력, 위아래, 주고 받기, 존경, 사랑, 보살핌, 증오, 모멸 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관계 속에 있는 것이랄까. 지금의 비참한 현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을 뿐이야.
저도 고1때 담임선생님이 학생주임이셨는데, 학기 초엔가 반장을 교무실로 불러다가 구둣발로 신나게 밟아대는걸 본 적 있어요. 그 소문이 퍼져서 한동안은 학년 전체가 잠잠했었으니까, 그 선생님은 그걸 좋은 노하우라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고등학교를 나름 21세기에 다녔는데도 참 야만의 시대였어요. (요즘은 저걸 '야만'이라고 쓰고 '낭만'이라고 읽는다면서요?) 첫째 자제분께서 학문에 어디까지 뜻이 있으신진 모르겠지만, 입시 과정 무사히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책 <사이버네틱스>가 도착해서 펼쳐봤는데, 확실히 골때리네요.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적분과 시계열 분석이 콸콸콸!
그때는 왜 그렇게 애들을 때렸을까요. 요즘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