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을 뒤적거리다가 ‘크리스토퍼 버틀러’가 보낸 뉴스레터를 읽게 됐어(나라고 구독한 뉴스레터를 꼼꼼하게 모두 읽는 건 아니다). 기억으로는, 일상 속 물건에 대해 쓰고 있어서 구독했던 것 같아. 이번 뉴스레터 중에 내 눈에 들어온 건 ‘20년 된 스케치북A 20 Year-Old Sketchbook’.
이 책에는 특별히 좋은 사진이나 자랑할 만한 이미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의 인덱스에서 중요한 순간처럼 느껴지는 페이지가 하나 있습니다. 나중에 2003년 11월 26일에 도장을 찍은 페이지입니다. 그날 저녁 미시간에 있는 아버지의 거실에서 책을 무릎 위에 펼쳐놓고 앉아 차탈회위크 발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프로그램의 고고학자들이 묘사한 당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습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밤이었어요. 아버지는 불을 피우고 계셨어요. 모든 게 기분이 좋았어요. 제 몸이 어떻게 느껴졌는지도 기억이 나는데, 당시에는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43세가 된 지금은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 같은 새롭고 좋은 느낌이었죠. … 시간 여행에 필요한 것은 물건과 약간의 인내심뿐이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난 종이에 대한 ‘페티시’(성적인 것까지는 가지 말자)가 다소 있는데, 갓 찍어낸 책의 질감과 냄새도 좋아하지만 오래된 종이의 그것을 더 좋아해. 가장자리가 노랗게 바래고 질감은 거칠어졌지만 팔랑거림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것들, 또는 중성지가 아니라서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곧 바스라질 것 같은 것들도 손가락으로 집어들고 있으면 각자의 매력이 있지.
이 취향은 인스타그램에서 ‘vintage paper’로 검색하거나 #vintagepaper 태그를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는데,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계정 중 돋보이는 것은 ‘Paper of the Past’야. “1840~1940년 사이에 만들어진 스크랩북과 일기”들을 공유하고 있고, 그 당시의 (미국) 사람들이 종이와 사진으로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 웹사이트, 블로그, 뉴스레터 모두 운영하고 있으데 인스타그램을 제일 열심히 하는 것 같으니 참고.
다른 빈티지 종이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들을 보면 다이어리를 쓰거나 콜라주 같은 혼합매체(mixed media) 예술에 이 종이들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더라. 나도 콜라주에 관심이 많은데, 고서 책방이나 헌책방을 한 번 돌아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어.
지난 주는 뉴스레터를 이틀이나 빼먹었어. 🙏죄송합니다. 이제 너무 늦게 끝나는 약속은 잡지 말아야겠어. 그나마 만들어져 가던 습관이 깨지니까 좋지 않네.
오늘은 노동절이라 쉬는 분들 많을텐데, 좋은 시간 보내시구요.
어렸을 때 종이와 노력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 시골에 살았는데 전통 화장실이었고, 화장실엔 전화번호부책이 한권 소쿠리에 담겨 있었어! 짐작했겠지만, 전화번호가 빽빽히 적힌 그 종이가 휴지 대용이었던거지! 근데 그게 은근히 맨들맨들하고 까칠해서 잘 안 닦이거든! 그래서 일 보는 도중, 부지런히 종이를 비벼줘야 돼! 조금 비비면 그대로 딱딱하고, 너무 세게 비비면 확 찢어지기 때문에... 약하게 오래 비벼줘야 돼~~ 그것도 정성이고 노력이고 인내거덩! 부지런히 오래 비벼준 후에 사용했을 때의 그 풀죽은 종이의 부드러운 촉감이 아직도 느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