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문구 얘기 좀 해보려고. ‘블랙윙’이라는 연필에 대해서.
일단 연필치고는 꽤 비싸. 한 자루에 2,500원 정도하니까 말이야.
이런 비싼 가격을 합리화하는 것이 보통 몰스킨처럼, 스토리텔링을 이용한 브랜드 마케팅이지. 역사적인 작가 누구도 쓰고 누구도 쓰고, 그러니까 그들을 느끼며 너도 써 봐 뭐 이런 식. 그리고 한정판 마케팅을 엄청나게 열심히 하면서 더 비싼 상품들을 뽑아내는.
난 그런 건 모르겠고, 쥐고 썼을 때 내가 기대하는 촉감대로 써지면서 기분이 좋아하는 게 최고.
블랙윙 연필의 기본 라인업은 네 종류 — 내츄럴Natural, 602, 펄Pearl, 매트Matte가 있는데 순서대로 B, 2B, 3B, 4B라고 보면 돼. 그 중에는 602가 제일 유명하다고 하더군. 블랙윙은 흑연에 왁스를 배합해서 부드러우면서 잘 부러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602는 나한테 너무 미끄럽게 느껴져. 심하게 얘기하면, 흐리멍텅한 느낌.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펄인데, 요즘은 매트를 쓰고 있어. 사실 평소 종이에 뭔가를 쓸 때는 주로 만년필로 쓰고 연필은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적어 넣을 때나 쓰지.
만년필을 쓸 때 손에 힘을 거의 주지 않고 약한 필압으로 쓰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연필도 비슷한 필압으로 쓰려면 진한 것이 좋더라고. 그래서 요즘은 가장 부드럽고 진한 매트를 주로 쓰고 있지. 부드러워서 그런지 지우개만큼 빨리 닳아 없어지는 듯.
블랙윙의 특징 중 하나는 납작한 지우개 모양이야. 그것 때문에 블랙윙인 걸 금방 알아볼 수 있는데, 실제로 써보면 일반적인 연필의 원통형 지우개보다 넓은 면적을 지울 때 더 편리해. 좁은 면적을 지울 때는 모서리를 이용하면 되고. 교체도 할 수 있어서 리필용 지우개도 팔긴 하는데, 한 자루 다 쓸 때까지 지우개가 부족한 경우는 별로 없었네.
저 납작한 모양 때문에 곤란한 게 하나 있는데, 몽당연필이 됐을 때 일반 연필깍지(익스텐더)를 못 끼운다는 거야.
이 익스텐더는 알루미늄 재질인데 자꾸 손으로 만지고 싶을 정도로 만듦새는 훌륭해. 문제는 아무리 알루미늄이라고 해도 무겁다는 거야. 그래서 연필을 잡았을 때 무게중심이 한참 뒤로 쏠리는 거지. 그래서 잡는 위치를 뒤로 해서 균형을 맞추거나 불가피하게 손에 좀 힘들 주고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바로 위 사진을 보면 연필에 흠집이 많지? 그게 다 연필깎이가 연필을 잡아주는 톱니 같은 부품(클러치) 때문에 생긴 거야. 신경 안 쓸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깔끔한 모습으로 쓰는 게 좋지. 그래서 그런 부분을 신경 쓰는 사람들은 ‘Carl Angel-5 Royal’이라는 연필깎이를 많이 써. 이 제품은 연필도 잘 깎이고 클러치가 고무로 되어 있어서 흠집도 안 나. 요즘 가격은 5만원 내외인 듯.
다른 선택지로는 알라딘에서 굿즈로 팔고 있는 ‘본투리드 연필깎이’가 있는데, 이것도 클러치가 고무로 되어 있고 가격은 10,500원. Carl은 둘째가 가져가서 지금 이걸 쓰고 있는데 나쁘지 않아. Carl처럼 딱 떨어지는 느낌으로 깔끔하게 깎이진 않는데 이 정도면 만족.
헙! 4월 초에 묵호에 다녀왔는데 거기 '연필 뮤지엄'이 있더라고요. 거기서 블랙윙을 처음 봤는데.. 외계인님은 역시 문구 마니아! 그 박물관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연필로 쓴 글이나 연필 자체가 그렇게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강릉 쪽 가게 되시면 한 번 들러보세요! 왠지 하루 종일 계실 것 같습니다. 만년필에 연필에.. 쇼핑 위시리스트가 늘어가고 이제... 탕진만 남았...😆
이 연필 처음 그었을 때 정말 "와..." 이랬어요. 몰스킨 같아서 편견이 좀 있었는데 확 날렸죠.
전 dux 연필깎이 써요. https://www.funshop.co.kr/goods/detail/29099 링크 찾다 보니 또 색깔별로 갖추고 싶은 생각이 밀려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