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열씨는 “1935년 을해乙亥생”으로 올해 89세이다.
거주지는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사창지 덕암마을이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아내 장두례 자녀 2남 2녀.
정직 충실 화목 가훈을 내세우며 산다.
어느날 아들에게 받은 사진기를 친구 삼아 마을사람들 일상과 풍경을 기념하다.
작년 88세 미수(米壽)를 맞이해 그동안 찍은 사진으로 아들이 사진집을 만들고, 전시회를 기획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八十八 88》, 양평열(지음), 북만손, 2023.
사진집의 첫 느낌은 농사 짓는 친척집에 놀러가 안방 벽에 붙어있는 액자들, 들기도 힘들게 무거워진 앨범을 넘겨보는 것 같았다.
이 어른은 사랑과 유머가 넘치는 분인가 보다. 아내와 자식에 대해, 이웃에 대한 시선이 사랑스럽다. 사진마다 붙은 설명은 담백하지만 웃게 만든다. “권오열 이장은 주민을 안는다”라니. 사진 그대로 썼을 뿐이데 재밌다.
가족을 다룬 대표적인 사진집인 전몽각 작가의 《윤미네 집》과 같은 수준의 사진들은 아니다. 대부분 가족과 마을 행사 등을 기록한, 누구나 찍는 사진이고 미학적으로는 의심스러운 사진들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사진들에 감정이 흔들리고 빠져들게 되는 걸까?
모든 사진이 즐거운 순간을 담았지만 두 장면 정도만 그렇지 않다.
물난리가 나서 집까지 물이 들어왔을 때.
그리고, 평목항으로 보이는 세월호 현장에 방문했던 사진.
노란 리본 옆에 선 노부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한참 흔들렸는데, 나이를 먹으니 마음의 근력도 떨어진 것 같다.
내가 중학교 때쯤 알고 지내던 나이 많은, 친한 형이 집에서 앨범을 보여주며 자기는 앨범 보는 걸 별로 안 좋아 한다고, 즐거운 모습만 찍혀 있기 때문에 그때의 아픔, 슬픔 같은 건 기억할 수가 없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양평열씨의 가족, 이웃들도 항상 즐거운 일만 있었을까. 갈등, 다툼이 없었다면 거기가 천국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많은 가족들과 무탈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건 기적처럼 느껴지는데, 양평열씨가 평범한 분은 아닌 것 같다. 이 분 83세에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아내를 돌보고 계시다고 한다. 사진보다 오래 갈 사랑. 이 분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사람에 대한 사랑은 이런 것이라는 얼마나 좋은 유산을 남기고 가실 것인가.
‘100세 시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현실감도 없고 내 일 같지도 않다. 그때까지 살든 못 살든 가져가야 할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자애로움, 인내심 같은 미덕들뿐이지 않을까싶다. 내게는 부족한.
좋은 말씀 고맙네! 수험생들을 가르치다가 한국경찰사... 윤봉길 의사 대목에서... 울컥하면서 수업이 잠깐 멎곤 한다. 3살 아들과 아내 뱃속의 아기를 뒤로 하고서 "장부출가 생불환"의 의지로 고향땅을 등져야 했던 20대 초반의 젊은 아버지... 두 아들의 애비가 되어보니...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거룩함에... 그분존함만 떠올려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나라사랑과 가족사랑의 마음을...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