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건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아버지의 영향이었던 것 같네. 그 시절엔 사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고급 카메라를 바가지 쓰지 않고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알기도 어려웠는데, 내가 고등학생 때였나 아버지가 동원에서 수입한 펜탁스 35mm SLR을 사오셨지. 신기해서 밤늦게까지 이렇게 저렇게 만지작거리다가 핀잔도 듣고. 아무튼 그 카메라는 결국 내 것이 되어버렸어.
사진집도 간간이 사곤 해. 처음에는 ‘열화당 사진문고’ 위주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유진 스미스, 로버트 프랭크 등 전설적인 사진가들의 사진집을 샀지. 사진은 보고 싶은데 돈은 없으니까 문고판 크기의 작은 사진으로라도 만족해야 했어. 지금처럼 인터넷만 치면 나오는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때 열정이 더 있었다면 도서관에 찾아가서라도 보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때보단 주머니 사정이 나아져서 꼭 직접 보고 싶은 사진집은, 그래봐야 일년에 두세 권 정도지만 구입하는 편이야. 국내 출판시장 수준도 올라가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는 사진집은 현지에서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어판이 나오더군.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사울 레이터의 새 사진집 《The Unseen Saul Leiter》가 2022년에 전 세계 동시 출간을 하면서 국내에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었어. 나는 얼마 전에 샀지.
이건 영어판 표지인데, 표지 사진을 뽑은 의도가 한국어판과는 좀 다른 것 같아. 한국어판은 이 사진을 뒷표지 사진으로 썼네.
사진은 좋고, 책도 잘 만들었어. 이 정도 크기의 사진집은 보통 꽤 비싼 편인데 정가가 3만원이니 요즘 책가격에 비하면 비싸지도 않아(영어판은 아마존에서 $39.49).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사진 하나만 꼽으라면 난 이거.
“슬라이드 아카이브에는 최소 4만 점, 많게는 6만 점의 작품이 존재했다”고 하니 정말 많지. 그것들을 다 정리하고 엄선해서 공개하려면 고생들 많이 했겠어.
사실, 사진집을 사서 평생 몇 번이나 볼까하는 생각도 들어. 게다가 사진집이 많아질수록 한 권을 보는 횟수는 줄어들겠지. 그래서 사진집을 산다는 건 수시로 보기 위한 목적보다는, 진짜 작품은 아니지만 종이에 인화, 인쇄된다는 사진의 특수성으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유사하게 충족하는(어쩌면, 속이는) 방법이 아닌가 싶어.
아무튼, 사울 레이터의 ‘통속적인’ 아름다운 사진들이 잘 담겨있는 책이라는 것.
예전보다 도판 품질이 좋아져서, 저한텐 작품 소유하는 방법이 되기도 해요.
표지는 원서가 훨씬 낫네요. 저도 비슷하게 펜탁스 미슈퍼로 시작했어요.
'작품이 존재한다'는 표현 같은 건 정말 ... '가격이 형성된다'만큼 싫어요. --;
나에게 사진집이란 연예인 포토북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