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나는 일들이 있어서 사놨던 책을 하나 집어들었어.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평정심을 찾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지음), 제임스 롬(엮음), 안규남(옮김), 아날로그, 2020.
아직 서문 정도밖에 못 읽었는데,
“너의 분노는 일종의 광기다. 무가치한 것에 높은 가격을 매기기 때문이다.” … 분노를 ‘가치에 대한 그릇된 평가’의 결과로 정의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사고 훈련이 필요하다. (p.6)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헤아릴 수 없이 광대한 것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것은 《분노에 대하여》에서 세네카가 특히 즐겨 구사하는 전략이다. (p.7)
분노는 당신의 도덕적 상태를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감정이다. (p.9)
그[세네카]는 원숙한 저술가로서 스토아 철학만이 아니라 그밖에 많은 철학적 전통도 글을 쓰는 데 활용했으며, 수사학이 번성하면서 위상이 높아진 실천 윤리를 지지하는 입장에 서서 이론과는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p.11)
《분노에 대하여》의 주제는 한마디로 자비로움이라는 의미에서의 인간애다. 세네카는 분노를 벌을 주고자 하는 욕망으로 정의하고는 그러한 욕망을 저지하기 위해 인간들이 공유하고 있는 많은 공통점, 특히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환기시킨다. … “우리는 악한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는 악한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에게 평화를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상호 관용의 협약뿐이다.”
세네카는 《분노에 대하여》에 자신이 가진 모든 수사학적 능력을 쏟아부었다. (p.14)
(이 책은 그의 말을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옮긴 것은 아니다. 《분노에 대하여》의 3분의 1가량만 발췌해 번역했기 때문이다. 전문을 읽고 싶다면, 시카고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로버트 카스터Robert A. Kaster와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의 《분노, 자비, 복수Anger, Mercy, Revenge》를 보라.) (p.15)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세네카가 날마다 실천한 묵상을 ‘자기 돌봄’이라는 개념의 모델로 삼았다. 현대 세계에 사는 우리가 한밤중에 조용한 침실에서 영혼의 많은 병을 치료할 길을 모색할 때 고대의 스토아주의는 영혼을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p.16)
세네카가 수사학과 미셸 푸코와의 연결 고리가 있다는 걸 알았어. 마침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 1981-1982,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심세광 옮김, 동문선, 2007)를 갖고 있어서 관련 내용을 찾아봤어.
세네카에 대해서는 계속 언급하고 있고, ‘1982년 3월 3일 강의 - 후반부’에서는 독서, 명상, 글쓰기, 서신 교환, 말하기 등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이 있네.
많은 저자들의 글을 읽지 말고 많은 작품과 텍스트를 읽지 말며 입문자나 입문을 이미 완료하여 교의의 근본 원칙들을 재활성화하고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중요하고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몇몇 구절을 선별해야 합니다. … 그것은 요약의 실천입니다. (p.381)
독서를 통해 명상의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 관건이며, 이것이 독서의 주요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p.382)
독서가 이처럼 훈련으로 여겨지고 명상을 위한 독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독서는 즉각적으로 글쓰기와 연결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기원후 1세기와 2세기에서 취해 보면 글쓰기가 자기 수련의 한 요소가 되어 버렸고 늘 한층 더 그렇게 단언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역시 훈련이며 명상의 요소인 글쓰기에 의해 독서는 연장되고 자신을 재강화하고 재활성화합니다. 세네카는 독서와 글쓰기를 번갈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세네카의 여든네번째 서신에 있습니다. (p.385)
읽고 쓰고 쓴 것과 노트한 것을 다시 읽는 데 있었던 훈련은 인간이 지니고 있던 진실과 logos를 자기화하는 준 신체적인 훈련이었습니다. “밤낮으로 이 사유들을 네 수중에(prokheira) 간직하라. 글쓰기를 통해 그것을 적어 놓고 독서를 통해 실천하라”고 말합니다. (p.386)
글쓰기는 자기 자신에게 유용한 활용이지만 타자에게도 유용한 활용입니다. 독서나 대화 그리고 강의에 대한 노트는 hupomnêmata라 불린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한다는 것을 깜박 잊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hupomnêmata는 독서나 기억 훈련에 힘입어 말해진 바를 다시 상기할 수 있기 위해 하는 기억의 요약 메모를 의미합니다.
이 hupomnêmata는 자기 자신에게 유용하지만 타인에게도 유용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혜택과 이익의 유연한 교환과 선과 자기 자신을 향하는 여정 내에서 타인을 도우려 하는 영혼 봉사의 유연한 교환 내에서 글쓰기 훈련이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역시 그것은 당대에 대단히 흥미로운 문화 현상이자 사회 현상인데 우리가 영적이라고 부르게 될 영혼의 서신 교환, 주체와 주체의 서신 교환, (예를 들면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서신 교환에서처럼) 정치 세계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의 소식을 전하고 타자의 영혼에서 발생하는 바를 염려한다거나 타자에게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소식을 달라고 요청하는 서신 교환, 바로 이것들이 보시다시피 이중적인 측면을 갖는 중요한 활동이 되어 버렸습니다. (pp.387~388)
이 책, 아껴 읽어야겠다.🧘🏻
자다가 허공에 발길질을 하곤 한다. 벌써 몇년 됐다. 두 달 전 쯤, 내가 미워하던 한 사람이 이제는 너무나 늙어버리셨음을 목격하고는, 그 분이 내게 상처만 주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랑도 주셨음을 떠올리게 되었고, 너무나도 측은한 마음에, 그날 밤 자기 전에 기도했다. "신이시여! 그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그를 미워한 저 역시 용서하소서!" 그날 밤부터 수면 중에 소리지르고 발길질, 주먹질하던 것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