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의 역사와 이론》, 제임스 A. 헤릭(지음), 강상현(옮김), 컬처룩, 2022. (pp.112~121) 🔖22% 읽음(+1%p)
레토릭은 이소크라테스의 문명 이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인간은 설득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이는 사회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고 협동적인 활동의 열쇠와도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이소크라테스는 통일된 그리스라는 생각에 전념했고, 레토릭이야말로 여러 영역에 있어서 자신의 교육 체계가 그러한 이상을 촉진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라고 믿었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BC 338년 카이로네이아에서 그리스 군대를 완전 패퇴시켰고, 범헬레니즘을 향한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 후 레토릭의 이론과 실천은 몰락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민주주의, 즉 레토릭을 진압한 새로운 정권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것이다. (p.113)
스파르타 여성은 시장이나 여타 공적인 장소에서 종종 남성에게 도발적인 말이나 정치적인 의미가 깃든 발언을 할 수 있었지만, 공적 말하기는 여전히 크게 제약이 있었다. 여성과 공적인 스피치에 대한 그리스의 통상적인 원칙에서는 크게 벗어난 이러한 예외는 마치 전쟁에서 용기가 필요한 것과 같이 중요한 공적 풍습을 강화하기 위해 허용한 것처럼 보인다. (p.115)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여성의 위상이 오히려 약화되어 온 것이 그리스 역사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간주된다.” 보다 많은 남성이 정치에 관여하게 된 점이 여성으로 하여금 공적인 생활 공간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p.116)
아스파시아의 경우 스피치 작가와 말재주꾼, 그리고 레토릭 선생으로서의 능력도 그랬지만 정치에 관한 지식도 상대가 없을 정도로 출중했다. 그녀는 “소크라테스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에게 레토릭 기술을 가르쳤고, 이른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Socratic method을 발명했을 것”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p.117)
레토릭과 민주주의는 공존하는 것이다. 둘 다 번창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 … 주요 소피스트는 BC 450년에서 BC 380년까지 약 70년 동안 아테네에서 활동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발적이고 개혁적인 레토릭 전문가들은 그리스인의 삶과 사고에 놀라운 영향을 미쳤다. (p.120)
누가 언어 권력에 접근해야 하며, 그러한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와 같은 언어 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는 레토릭 역사의 영원한 특징이 되었다. (p.121)
(Aurora Gaius Julius Caesar w/ Diamine Eclipse)
어제 얘기한 대로 노트 정리하는 영상을 만들어봤는데… 실패!😫 만년필 사각거리는 소리를 녹음하려고 마이크 게인을 높였는데, 바로 옆에 있는 컴퓨터 스피커를 깜빡 잊고 안 껐더니 웅~하는 잡음이 엄청 들어갔어. 그래서 볼륨을 높이면 들어줄 수가 없네. 그리고 내 숨소리는 또 왜 그렇게 크게 잡혔는지…
그래도, 다음 영상을 위한 실패의 기록으로 올려보기로 했어. 다음 꺼는 이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조직에 들어가보면 사내정치가 팽배한 경우가 많더라고. 사내정치가 저급하게 흘러가면 욕하고 비난하고 교묘하게 외톨이를 만드는 경우가 많더라고. 그렇게 부정적인 사내정치가 판을 치는 곳에선 말할 자유가 봉쇄되지. 말을 잘못했다가는 타겟이 되기 십상이니까. 어느 조직이 건강해지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구성원에게 최소한 말할 자유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 말의 옳고 그름, 가치있는 발언인지 여부를 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