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에 대한 사랑은 대여섯 살쯤 소년잡지로부터 시작한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보면 만화와 특별부록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었겠지만 글씨, 글자에 대한 감각은 그때 생겨난 게 아닐까 싶어. 그리고 ‘잡지’에 대한 사랑은 그 뒤에도 한참을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딱히 취향에 맞는 잡지, 매거진을 찾지 못해서 관심이 멀어졌어.
그러다 오랜만에, 종종 관심 있는 주제(매거진, 스케치북, 스튜디오 등)를 다룰 때마다 사서 봤던, 일년에 한 번 나오는 디자인 무크지 〈GRAPHIC〉 47호(2021)를 보게 되었네.
일단 이번 호는 참 독특해. “제각각의 주제와 리서치 방식에도 불구하고 공유되는 문제의식과 그에 걸맞은 표현 방식을 보는 것도 이번 이슈의 흥미로운 측면 중 하나”인데, “컨트리뷰터 작업과 필자들의 기고문은 무선 제본으로 한꺼번에 묶지 않고, 브로슈어나 전단처럼 독립적으로 제본해 우편물 형태의 상자에 담”아서 나왔어. 이런 ‘찌라시’ 느낌 매우 좋아함.
인쇄물로 만들 수 있는 각종 형식을 모두 사용해 본 모양이야. 심지어 스티커까지. 해외 필자들의 기고문은 영문으로 싣고, 한국어 번역은 하나의 책자에 모았어.
정보를 시각화하는 솜씨는 매우 좋고.
‘거침과 매끄러움: 가라오케와 초기 줌(Zoom) 시대의 관계 맺기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온라인(디지털) 커뮤니티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관심 있게 봤어.
2020년은 디지털 커뮤니티 디자인과 관련한 유용한 발표들1이 눈에 띄는 해였지만, 나는 여전히 가라오케가 지닌 거칠고, 예측불가능하고, 때로는 부드럽기까지 한 힘에서 나오는 혁신적인 에너지를 찾아다니는 중이다. 어쩌면 우리들 각자가 처한 상황에 이를 적용시켜 보아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조직을 위한 일곱 가지 제안을 담은 미완의 목록을 아래 제시해 본다.
기존 위계질서를 강화하기보다는 좀 더 수평적이고 참여적인 대화를 권장하자.
메시지를 과잉통제하거나 경험을 과잉생산하기보다는 허점의 노출과 거친 분위기에서 나오는 생산적인 측면을 포용하자.
균일한 온라인 경험을 고안하기보다는 다양한 유형, 감각 활용, 참여 시간 등을 나란히 고려하는 이질적인 이벤트들을 상상해 보자.
일방적인 내용 전달보다는 상호 의사소통이 활발한 개방적인 상황들을 모델로 삼자.
매번 어떤 기술을 사용해야 할지 걱정하기보다는 소프트 스킬과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는 도구들의 유용성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자.
최첨단 기술의 플랫폼을 이용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사용가능한, 특히 누구나 공유할 수 있고 협업이 가능한 도구들을 창조적으로 사용하거나 오용하자.
매번 새로운 경험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배움의 기회로 여기면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대하자.2
이제 내일 저녁 6시면 두근두근하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