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후에 선생님께서 ‘신新수사학’에 대해 알려주시며 《페렐만의 신수사학》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책을 끝까지 읽지는 못했는데, 선생님의 수사학 특강 자료(2017년)에서 내용을 참고할 수 있었다. 그 부분만 옮겨보자면,
카임 페렐만(Chaïm Perelman)의 신수사학(New Rhetoric)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재해석한 약화된 이성적 추론[New Argumentation]
rational(이성적)과 reasonable(합리적)의 구별
형식논리의 범주에 근거하지 않는 판단도 합리적일 수 있다.
다원주의와 대화
대화는 견해의 단순한 교환 뿐만 아니라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논쟁
‘무제한적 청중’과의 대화라는 상황 가정
초월적·순수이성적 원리를 언급하지 않는다. 법과 권리에 대한 해석, 역사적 경험에 근거 — 비형식적 논리적 추론 방법론
논증과정
분석·탐구·추론에서 도달한 단계에서 내린 결론은 상대적·부분적 진리이고 현실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부분적 진리는 무제한적 청중을 대상으로 완전한 진리를 향해가는 과정이다.
출발점: 인간적·실제적·정치적·도덕적 문제들은 참/거짓의 이율배반 명제로 환원될 수 없다. 대립항 양자의 입장 모두 부분적으로는 진리, 끊임없는 사유과정이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으로부터 의식적 선택에 근거한 합리적 결정과 실천적 행위로 이끄는 도구로서의 수사학
대화의 조건
참여자의 관심 유도
참여자에게 자유부여
청중: 화자가 논증을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 전체
청중의 사회적 기능
아첨과 적응의 구별
보통사람의 동의를 얻는 기술
진리(truth)는 객관적 현실태와 관련 실제 행동과 관련, 사실의 결합관계에 관련된 복잡한 체계
사실(fact)은 정확하고 제한적인 동의의 대상
카임 페렐만은 “폴란드 태생의 벨기에 철학자 겸 신학자로서 ‘신新수사학Nouvelle Rhétorique’의 창시자이자 브뤼셀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이다. … 뤼시 올브레히츠-티테카Lucie Olbrechts-Tyteca와 공동으로 저술한 《논증론 - 신수사학》(Traité de l’argumentation: la nouvelle rhétorique, 1958)을 통해 플라톤의 소피스트 수사학에 대한 비판을 무릅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복원하여 이에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였고, 《정의와 이성》(Justice et raison, 1963), 《법, 도덕 그리고 철학》(Droit, morale et philosophie, 1968) 등의 저술이 있다.” (《수사 제국》 저자 소개 중)
페렐만 또는 신수사학과 관련되어 국내에 번역된 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찾을 수 있는 건 두 권뿐이다.
《페렐만의 신수사학: 새로운 세기의 철학과 방법론》, 미에치슬라브 마넬리(지음), 손장권·김상희(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수사 제국: 수사와 논증》, 카임 페렐만(지음), 이영훈·손장권(옮김),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20.
번역돼 나오진 않았지만 신수사학의 문을 연 《논증론 - 신수사학》을 포함하여 초판, 개정판을 발간 순서대로 보면(한국어판 제외),
《논증론 - 신수사학》 초판 1958.
《수사 제국》 초판 1977.
《페렐만의 신수사학》 1994.
《수사 제국》 개정판 2002.
《논증론 - 신수사학》 개정판 2009.
《수사 제국》 한국어판은 2002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했다고 한다. 옮긴이 후기에 따르면 “페렐만의 《수사 제국》은 사실상 그의 주저 《논증론 - 신수사학》의 축약본이다. 그럼에도 1977년 최초로 발간된 《수사 제국》에는 1958년의 방대한 《논증론 - 신수사학》에 비해 새로운 예시들이 추가되었고 보다 최신 문헌들이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비교적 최근의 연구성과를 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는 정리를 끝내지 못한 《페렐만의 신수사학》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그 후에 《수사 제국》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소피스트,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로 이어지는 고대수사학은 수사학의 기본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이니 병행해서 항상 들여다봐야 할테고.
그리고, 내 ‘대화’에 대한 관심(239호 참고)은 플라톤의 대화편과 이 신수사학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