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서비스 만들기
47호에서도 얘기했었지만, 회사에서는 주로 서비스(내가 말하는 서비스는 모두 웹, 앱 같은 디지털 서비스 — 요즘은 이 말보다는 프로덕트, 플랫폼 등등으로 더 폼나게 부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만드는 걸 기획하거나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어. 그래서 뭐 애자일이라든가 ‘Shape Up’이라든가 각종 방법론에 관심이 많다고 했었지. 그런데 말이야 요즘 드는 생각은, 방법론이란 거 결국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인 거 아닌가 싶어.
대중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는 정말 많은 관여자들이 있지. 서비스를 만들라고 시키는 사람, 그걸 이용해 자신의 성과를 만들려는 사람, 직접 만드는 사람(그 안에서도 다양한 역할이 있고), 만드는 걸 도와주는 사람, 만든 걸 알리는 사람, 그 서비스를 만든 의도대로 쓰는 사용자, 의도와 다르게 쓰는 사용자 등등의 욕망이 얼키설키 뒤엉켜 있는 거야. 나는 이 모든 걸 이해하는 게 여전히 자신이 없다.
이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 누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에 대한 ‘상상’이 달라지겠지. 요즘은 다들 최종사용자, 소비자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다른 관여자들의 의도적이거나 비의도적인 영향 때문에 항상 원하는 대로 되진 않아.
그래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방법론이 아닌 제대로 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는 거고, 알다시피 쉽지 않은 일이지. 큰 회사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니까 그래서 쉽게 변하지도 않고 문제도 많은 것 아닐까라는 당연한 생각을 해봐.
그리고 이걸 공학(engineering)과 결합해서 서비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처럼 신기술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유행도 빨리 바뀌는 상황에서 특정 기술을 장악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어. 뭐 하나 좀 대충 알아들을만 하면 또 다른 게 튀어나와서 우루루 몰려가니까 말이야. 직접 구현해야 하는 엔지니어들은 더 쉽지 않겠지.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서비스는 이거야.
서비스 = 소비자의 문화 + 생산자의 문화 + 공학
얼마 전에 읽은 ‘How Big Tech Runs Tech Projects and the Curious Absence of Scrum’를 보면 예상과 달리 스크럼 같은 특정한 방법론에 얽매이지 않는 회사들이 많더라고.
결국은 좋은 서비스를 만들려면,
다양한 행위자들의 욕망, 의지, 이해관계에 대해 잘 이해하고
그걸 현실화하는데 필요한 공학, 기술을 확보해야 하고
현재의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설득
해야 한다고 생각해.
요즘 자꾸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을 정리해봤어.
이번주도 수고하셨습니다. 연휴들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