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내드리는 글은 〈노상기록〉 34호(2025.6.20)입니다.
이번 글은 제가 노트를 쓰는 방식과 전각, 장서인을 만들며 알게 된 것들을 썼습니다.
이제 6월도 거의 다 지났고, 〈노상기록〉 7월 멤버십 모집을 시작합니다.
노트 대신 A6 카드에 주로 책 정리와 메모를 한다는 건 여러 번 얘기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카드는 카드보관함에 정리하지만 자주 펼쳐봐야 하는 카드들은 링 바인더를 이용한 노트를 쓴다. 이 방식은 카드를 넣고 빼기가 꽤 편리하다.
빨간색 노트에는 더 발전시켜야 할 아이디어나 메모, 카드보관함으로 보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카드들을 모아두고,
초록색 노트에는 읽을 책, 분류별 — 가령 회고록 관련, 만화, 그래픽노블, 문화 연구 관련, 인문주의적 기술 관련 등 — 책 목록을 정리해 놓고 있다.
저렇게 링에 맞는 네 개의 구멍을 뚫어주는 전용 펀치도 있어서 크기만 맞는다면 전용 종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튼 재밌게 쓰고 있다. 역시 문구는 사용할 때 재미를 줘야한다. 그 재미라는 것이 ‘재밌는 영화' 같은 것에서 주는 재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말하자면, 직접 손에 쥐고 사용해서 의도에 근접한 결과물을 얻었을 때 느끼는 재미 같은 것이다.
그 도구가 손에 전해주는 진동을 오랫동안 느끼다보면 감각은 더 예민해지고,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생기면 더 좋은 도구를 찾아나서게 되고 그런 것 같다. 내 경우에는 만년필에서 그 점을 분명히 느꼈는데,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18K 펜촉 대신 스틸 펜촉의 만년필을 쓰진 않는다.
그런데 만년필은 또 종이와 잉크라는 변수가 있어서 그 조합을 찾다보면 번잡해져서 원래의 목적을 잃고 만다. 요즘은 두세 개의 정도의 만년필, 한 종류의 종이, 검은 색 잉크는 오로라 정도로 한정해서 쓰고 있다. 그래서 처분하고 싶은 만년필들이 꽤 생겼는데 내가 쟤네들을 팔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전각 역시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중요하다. 재료로 사용하는 돌의 종류마다 깨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돌에서 전해오는 느낌에 따라 칼을 쓰는 힘을 미세하게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힘 조절'은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 관여하는 것 같다.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들을 오랜 시간 동안 받아들이며 익숙해지면, 이제 그 미세한 차이까지 느낄 수 있는 감각들에 호응할 수 있게 몸의 근육들마저 만들어져서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 고수가 되는 과정 아닐까 싶다.
좀더 젊은 나이에, 흐릿하지 않은 눈, 각종 근육과 신경 들이 더 생기에 찼을 때 전각을 시작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쓸모없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아마도 이건 또 '완벽한 상황'을 상상하는 버릇에서 나오는 것일 거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시간을 통해 갖게 된 경험, 지식과 더불어 더 젊은 신체까지 바라는 욕망인 것이다. 이제는 그 뻔한 속임수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의미와 형태와 공간을 담아낸 설계를 하고, 예쁘고 깨끗한 돌을 골라 인면(印面)을 정갈하게 다듬고, 내 의도를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돌에 세심하게 옮겨놓는 과정을 매번 즐긴다. 이 반복이 쌓여 더 큰 무엇인가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한 번에 하나씩 완성하고 찍어 나온 모양을 오랫동안 쳐다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