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읽기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알지 못하는 세계에 관한 지적, 감정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내 정신적 세계를 넓혀가면 사람들, 사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올리비아 랭의 《이상한 날씨》를 읽고 내 세계는 조금 더 넓어졌다.
《이상한 날씨: 위기가 범람하는 세계 속 예술이 하는 일》, 올리비아 랭(지음), 이동교(옮김), 어크로스, 2021
Funny Weather: Art in an Emergency (2020)
이 책의 부제는 '위기가 범람하는 세계 속 예술이 하는 일'(Art in an Emergency)이다. 저자 올리비아 랭의 일관된 관심은 "예술이 저항과 회복에 관련을 맺는 방식", "그들의 예술이 우리의 세계관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랭은 자신의 글이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Eve Kosofsky Sedgwick)의 〈편집증적 읽기와 회복적 읽기: 편집증이 심한 당신은 아마 이 글이 당신의 이야기인 줄 알 것이다〉(Paranoid Reading and Reparative Reading, or, You're So Paranoid, You Probably Think This Essay Is About You)에 영향 받았음을 밝힌다.
이 긴 부제가 달린 에세이의 요지는 이렇다.
"폭로를 향한 편집증적인 의무감이 오랫동안 중대한 접근법으로서 우위를 점해왔으나 위기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며, "편집증적 읽기는 불시의 습격에 따른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시도"인데, 그것은 방어적이고 냉소적이다.
"편집증적 독자들은 폭력의 이면을 벗겨내는 데 사명감을 느끼며, 끔찍한 진실도 드러나기만 하면 자연히 변모할 것"이라고 믿을만큼 순진하다.
회복적 읽기는 위험, 고통의 회피가 아니라 창의성, 생존, 쾌락의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독을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양분을 찾는 데 더 집중"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만들어내는 데 열중하면서 해로운 환경을 벗어나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실과 압제의 암울한 현실을 외면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지윅의 책이나 이 에세이는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 같은데, 원문은 구했으니 직접 번역해 읽어 볼 수밖에 없겠다.)
회복적 읽기에 관해 '편집증적으로' 파악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책 전체를 읽고나면 회복적 읽기가 무엇인지, 랭이 그 영향과 얼마나 잘 공명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게도 읽기와 쓰기의 또 다른 세계를 넌지시 알려줬다.
친절과 환대
랭이 쓴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예술가들은 심상치 않은데, 퀴어(Queer) 예술가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퀴어'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매우 빈약하지만, 스스로 편견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처치도 아니다. 그들의 예술은 알지만 그들의 삶은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외면한 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되는지 의문이 뒤따른다. 양심이나 의무감 때문은 아닐 것이다. 최선을 다해 표현해 보자면, 같은 시대, 같은 공동체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일 것이고, 그건 이 책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친절과 환대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기독교 신자이고 나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 이 점에 동의한다. 바로 친절이 중요하다는 것. 친절을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 절박한 이방인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나라를 상상해 보라. 이제 우리는 나를 사로잡았던 질문을 마주한다. 상상 속 그 훌륭한 나라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그 아름다운 삶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까?
— 〈버려진 사람의 이야기〉 중, p.72
이번 계엄과 탄핵 사태를 겪으며 마음을 어지럽히는 질문들은 이것이다.
언젠가 내게 친절했던 어떤 아줌마, 아저씨도 헌법재판소 앞 저 정신나간 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악다구니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특정 지역,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마음 밑바닥에서 자라나며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자신을 문득 발견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나는 이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친절을 베풀며 그들을 환대할 수 있을까?
만약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내전을 치르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 사태가 결론이 난 후에도 답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존 버거(John Berger)에 관한, 이런 생각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호스트[host]. 환대[hospitality]와 병원[hospital]의 근원을 서성이는 정체 모를 단어가 또 하나 등장한다. 호스트는 환대를 베푸는 개인을 뜻하면서 동시에 집단과 떼, 무리를 의미한다. 그 어원은 두 개의 라틴어로 나뉘는데, 하나는 타인이나 적을 뜻하는 단어이고 다른 하나는 손님을 뜻한다. 나는 이것이 버거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각이나 판단이 언제나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어떠한 대가가 따르더라도 친절을 택해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라고 일깨워 주는 것이 말이다.
— 〈환대의 의미: 존 버거〉 중, p.388
이 책에는 수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그 중 한국어판이 있는 책은, 절판도 포함하여 어림잡아 3분의 1 남짓인 것 같다. 그 중 읽어보고 싶은 책이 꽤 있는데,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 매기 넬슨의 《아르고호의 선원들》, 힐러리 맨틀의 《울프홀》,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5부작, 데버라 리비의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등이다.
저 책들은 일단 미루고, 다음으로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읽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눈을 흐리게 만든 한 구절을 옮겨본다.
"누구에게나 살고자 하는 깊은 욕망이 있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험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 〈미스터 귀재 따라잡기: 데이비드 호크니〉 중,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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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말 좋네요! 회복적 읽기에 관심이 가고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읽으신 책을 혹시 제가 중고로 구매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