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사계절이 원망스럽다가도 단풍 덕에 그 원망은 쌓이지 않습니다.
우리집 단풍놀이 코스는 매년 같습니다. 창밖 풍경으로만 보던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에 눈인사를 하러 갑니다.
항상 한 그루는 환영하듯 먼저 잎을 뿌리고, 나머지 한 그루가 손님을 맞습니다. 그리고 나무와 가족은 올해가 모두 지나갔음을 인정하고, 함께 겨울 맞을 준비를 합니다.
매년 처음인듯 똑같은 사진을 찍지만 셔터를 누르는 나는 달라졌겠죠. 어떻게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한두 개쯤 더 볼 수 있게 되었을까요.
서로 가려주는 궁전의 처마들은 성(城)인듯 잘난 척 하지 않습니다.
고궁에 오면 좋은 것은 건물에 막히지 않은 하늘과 땅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마침 그게 가을 하늘이라면 더이상 바랄 게 없죠.
창덕궁을 거닌 후에는 연결된 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건너갑니다. 내년 초에 종묘 정전 보수가 끝나고 나면 창경궁에서 또 종묘로 넘어가는 계획을 세워 볼 수 있겠네요. 창덕궁 → 창경궁 → 종묘.
단풍나무는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빨갛게 단풍 든 단풍나무, 혼자만 푸른 단풍나무, 이미 노랗게 말라버린 단풍나무. 주장들이 강하네요.
지금 춘당지 사진은 누가 찍어도 초현실적입니다. 단풍, 흰구름, 샛파란 하늘이 비친 연못이라니요. 말도 안돼.
습관처럼 들어간 대온실에는 분홍 동백이 피어있습니다. 본 적이 있던가요. 내년 봄에는 선운사 동백을 때맞춰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 마음 한켠에는 겨울에 대한 두려움 또는 겨울 같은 삶의 버거움이 함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견뎌내고 나면 언제나처럼 격려의 꽃다발이 도착하겠죠. 항상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까요.
🎵 배경음악은 크리스 리(Chris Rea)의 'Fool (If You Think It's Over)'
사진과 글이 참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