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2)
이 책을 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로마 역사 속 다방면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저는 키케로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희랍의 수사학을 총망라했을뿐 아니라 그 수사학의 화신(化身) 또는 현현(顯現)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는 키케로가 존경하는 대 카토(Cato the Elder)의 목소리를 빌려, 노년에 대한 네 가지 통념이 왜 잘못된 것인지 반박합니다.
사람들이 노년을 몹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네 가지를 들 수 있네.
첫째, 활동적인 삶에서 멀어진다.
둘째, 육체가 허약해진다.
셋째, 거의 모든 관능적 쾌락이 사라진다.
넷째, 죽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자네들만 괜찮다면, 이 이유들이 과연 타당한지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겠네. (p.46)
각 통념에 대한 반박도 수사학적으로 분석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건 제가 수사학 공부를 좀 더 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가난하다면 그에게 노년은 가벼운 짐이 아니네. 하지만 어리석은 자에게는 세상의 돈이 모두 그의 것이라 해도 노년이 편안할 수 없는 법이네. (p.34)
와 같은 문구는 경제적 능력, 노후 대책 등이 최우선 고려사항이 된 현대에도 고전이 여전히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삶의 길은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고 자네들은 그 길을 오직 한 번만 갈 수 있네. 인생의 단계마다 그에 따른 특성들이 있네. 아이 때는 약함이, 청년일 때는 대담함이, 중년에는 진지함이, 노년에는 원숙함이 있네. 이것들은 제철에 수확해야 하는 과일 같은 것이네. (p.79)
극장의 앞줄에 있는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뒷줄에 있는 사람도 암비비우스 투르피오의 연극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네. (p.107)
와 같이, 본인의 주장과 적절하게 어울리는 비유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듭니다.
그 외에도 인용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이 있으나, 이 책을 직접 읽으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빼앗고 싶진 않습니다(영화에 대한 스포일러에는 엄격하지만 책은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것 같네요).
제가 사십 대 초반에 이 책을 읽었으면 어땠을까요? 지금과 같은 이해, 공감 같은 것은 없었을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이 길지 않구나’라고 한 번이라도 느껴 본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