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법의 고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 모티머 애들러와 찰스 밴 도렌의 《How to Read a Book》의 한국어판이 올해 새로 출간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표지로 기억하고 계시겠죠.
비닐 커버로 꼭꼭 싸맨 — 예전에는 종이로든 비닐로든 책에 커버를 씌워서 읽었죠.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면 그렇게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책이 귀해서였는지 제본이 부실해서였는지 잘 모르겠네요. — 이 책 《독서의 기술》을 중학교 자유 독서 시간에 매번 붙잡고 있었으나 끝내 끝내지 못했죠. 어찌나 재미가 없던지. 독서 시간은 보통 토요일이다보니 집에 빨리 가고 싶어 더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 이력을 살펴보니 참 복잡합니다. 《독서의 기술》 이후에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초판(멘토, 2000)과 개정판(2012)이 나왔고, 《교사 없는 독서법》 (물과숲, 2021)으로 제목을 바꿔 나왔다가 올해 또 다시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시간과공간사, 2024)으로 번역판이 나온 것이죠.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모티머 애들러 · 찰스 밴 도렌(지음), 독고 앤(옮김), 시간과공간사, 2024
재밌는 것은, 범우사판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사람이 번역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2012년판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의 알라딘 리뷰를 보면 번역에 대한 불만이 유독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책 페이지에는 옮긴이 정보가 아예 없군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책 표지에는 남아있는 것을.
번역판을 낸 출판사가 매번 다른 것으로 보아 한국어판 라이선스를 둘러싼 옥신각신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지만 제가 알 수 있는 일은 아니네요.
그런데 올해 나온 번역판이 “한국어판 독점계약”을 했다고 하는데, 첫 번째 한국어판인 범우사의 《독서의 기술》이 절판되지 않고 여전히 잘 팔리고 있는 것(알라딘 판매지수 6,200)은 또 무슨 일인가 싶네요.
옮긴이가 임의로 영어판의 내용을 편집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서의 기술”이라는 간단명료하고 핵심을 찌르는 제목의 힘 때문일까요? 반면 새로운 번역판들이 영어판 제목과 동떨어졌을뿐더러 시선을 끌지 못하는 제목들을 사용한 이유도 의문이네요.
이게 다가 아닙니다. 또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새 번역판의 온라인 중고를 검색해보니 같은 출판사, 같은 표지의 책임에도 출간연도는 2003년으로 되어 있고, 온라인 중고 가격들이 새 책 정가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는 거에요. 다른 책인 거죠.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 책이 중간에 절판되었다가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출간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2003년이면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의 초판(2000)과 개정판(2012)의 중간에 출간됐다는 건데 말이죠.😵💫 중고가를 그렇게 높게 책정한 것도 의외네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는 얘긴지.
이렇게 여러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한국어판을 내놓을만도 한 것이, 영어판이 1940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1972년에 개정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아마존 "General Books & Reading" 카테고리에서 여전히 2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게다가 전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는 1,856위에요. 웬만한 신간은 넘볼 수 없는 순위의 스테디셀러인 것이죠. 미국 독서 교육에서 이 책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내용을 제대로 다시 확인해보고 싶네요.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시대에, 또 '텍스트힙'이라는, "뇌엽 절제술"을 받은 후 만들어 낸 것 같은 용어 — 책을 읽는다는 게 소셜미디어에 과시할만한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그러나 밥을 먹거나 물 마시는 것을 두고 힙하다고 하진 않죠. — 가 회자되는 시대에 이런 독서에 관한 책이 자기계발 외에 어떤 의미를 만들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