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강원국씨가 연설문을 작성하는 방법, 더 나아가 글쓰기에 관해 쓴 책입니다. 단지 실용적 측면만을 다루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경험한 두 대통령의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신념과 실천을 전하고 있지요.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지음), 메디치미디어, 2014
출간된 지 벌써 십 년이 됐는데 많이 알려지고 또 팔린 책이라 내용에 관해 말하는 것보다 지식정원에 요약정리한 내용을 보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연설을 하려고 하는 또는 연설문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이 책에서 얻은, 좋은 연설문을 쓰는 방법보다 더 큰 성과라고 여기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재발견입니다. 그가 얼마나 올바름을 향해가려는 인간이었으며 한국과 국민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 중 이 문장은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나는 가장 현실적인 정치인이면서 가장 비현실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원칙과 현실을 합해서 현실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하고, 둘 중에 하나를 버릴 때는 현실을 버리고 원칙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 김대중, 《나의 길 나의 사상》 (1994)
— 《대통령의 글쓰기》, p.292
보통의 인간이라면 현실에 굴복하고 원칙을 버리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원칙을 지킨다는 것을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말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습니다.
국민의 정부가 시작된 1998년은 제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정치에는 냉소적이던 때였어요. 그리고 IMF가 우리나라를 점령한 시기이기도 하죠.
당시 제게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후보 단일화 결렬로 민주 진영의 대통령 선출에 실패하고, 정계은퇴 얼마 후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대통령 후보에 출마해 결국 대통령이 된 그런 인물이었죠.
또 인터넷 관련 회사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한 제게, 국민의 정부가 내세웠던 IT 및 벤처기업 지원이라는 정책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로 인한 거품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빛과 그림자가 분명했고, 저는 운 나쁘게 그림자 아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제가 알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네요. 정치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그의 세계는 넓고 깊었습니다. 그 세계를 더 많이 알고 싶어졌어요. 우선 책을 통해 아는 방법이 있겠죠.
우선 《김대중의 말》은 그의 "50여 년간의 연설, 강연, 성명, 법정진술, 옥중서신, 인터뷰, 대담, 기념사, 저서 등에서 엄선"(책소개 중)한 내용을 옮긴 책입니다. 중요한 시기의 다양한 자료를 일람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대부분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발췌해 옮겼기 때문에 전문을 읽을 수는 없어요.
《옥중서신》은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에서 이희호 여사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엮은 책입니다.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1권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편지 중심이고, 제2권은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모음이라고 해요.
사형 판결 후 교도소 수감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떤 편지를 주고받았을지 잘 상상이 안 돼요. 정치인이자 지식인인 부부는 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냈을까요? 편지라는 형식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특히 더 기대가 많은 책이에요.
《김대중 자서전》은 '정본 자서전'을 표방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하기 전, 만 6년 동안 준비"한 자서전이라고 합니다. 모두 두 권, 1348페이지로 꽤 많은 양이에요. 다루고 있는 시기는 1924년 출생부터 2009년 6월 서거 두 달 전까지구요. 그를 알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하는 책 같네요.
그리고 지난주에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과 서거 15주년을 기념하여 《김대중 육성 회고록》이 출간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연구진들과 2006년 7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41회 42시간 26분의 구술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고 해요.
이 책 역시 《김대중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출생부터 서거 직전까지를 다루고 있구요. 아직 읽진 않았지만, 《김대중 자서전》을 먼저 읽은 후 보완을 위해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읽거나, 그 반대 순서로 비교적 양이 적은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개론’처럼 먼저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연설의 영역으로 한정해서 보자면, 한국에도 연설의 모범으로 삼을만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1 맨날 미국 대통령들 연설만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리고 두 대통령의 수많은 연설이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에요. 게다가 유튜브 덕에 연설 장면을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으니 그 또한 다행이에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들에 대한 비평은 아직 읽지 못해서 추후의 과제로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