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문을 잘 쓰고 연설을 잘 하는 방법에 관해 전 미국 대통령 스피치라이터가 쓴 《이렇게 스피치는 시작된다》에서 간결함과 명료성이 드러난 연설로 꼽은 영화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단지 두 명의 대화 같기도 한 이걸 '연설'이라고 하는 게 우리 통념(연설은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것)에는 잘 안 맞지만,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하고 협박 같기도 하고 설득 같기도 한 이 장면은 공식적 언어행위1입니다. 여기서 사적인 것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건 우리가 선택한 비즈니스”이니까요.
나와 함께 자란 꼬마가 있었지. 그 꼬마는 나보다 좀 어렸는데 나를 어려워하는 편이었어. 우리는 처음에 함께 일을 시작했고 길거리에서 우리 식으로 생계를 꾸렸지. 수입은 그런 대로 짭짤했고 우리는 열심히 돌아다녔어. 금주법 시대에 우리는 당밀을 캐나다에 날랐고 꽤 큰돈을 만들었지. 너의 아버지도 그랬어.
누구 못지않게 나는 그를 아꼈고 믿었지.
그 후에 그는 아이디어를 하나 품었는데 해변으로 가는 길에 병사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사막도시를 만들겠다는 거였어.
그 꼬마의 이름은 모우 그린(Moe Green)이야. 그리고 그가 창건한 도시가 라스베이거스(Las Vegas)지.
비전과 배짱이 있는 큰 인물이었어. 그런데 그 도시에 그를 기리는 동상은커녕 명판 하나, 표지판 하나 없잖아.
어느 놈이 그의 눈에 총알을 박았어. 누구 짓인지 아무도 모르지. 내가 그 비보를 들었을 때 나는 분노하지 않았어. 나는 그를 알잖아. 고집불통에 큰 목청에 엉뚱한 소릴 해 대는 걸 알거든. 그래서 주검으로 왔는데도 나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어.
그리고 나 혼자 중얼거렸지. 이건 우리가 선택한 비즈니스라고. 나는 어느 놈이 사주했는지 묻지 않았어. 비즈니스와 아무 관련 없으니까.
네 방 포대에 200만 불이 있을 거야. 잠깐 눈을 붙이러 들어갈 텐데 내가 나왔을 때 그 돈이 내 테이블 위에 있으면 동업자로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닌 걸로 알아야겠지. (p.58)
출연하는 영화마다 (‘연설’이 어색하다면 '스피치') 명 스피치 장면 하나 이상은 꼭 연기하는 알 파치노가 저렇게 가만히 듣고만 있는 걸 보니 재밌기도 하네요.
〈히트〉에서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가 마주 앉아 대화하는, 영화사에 남을 장면도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이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좋아요.
질문에 비꼬는 대답을 하며 대화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그에 상관하지 않고 할 말을 하고, 은유를 사용하고, 다른 이의 말을 인용하고 등등.
여기서 알 파치노의 대사는 직접적인 반면 로버트 드니로는 수사학 기술을 동원한 대사가 많네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로버트 드니로가 오로지 잔학무도한 은행강도가 아니라 지적이며 인간적인 에토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둘은 서로를 설득하는데 실패하지만, 동전의 앞뒤 한 면씩을 차지하고 있는 같은 인간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눈빛을 교환합니다.
명대사 나오면 적어놓기 좋아하는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