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지 않고 《저자로서의 인류학자》의 '2. 텍스트 속의 세계: 『슬픈 열대』를 읽는 방법'을 읽는 일 그리고 이 장을 읽고도 《슬픈 열대》를 읽지 않는 일, 둘 모두 힘든 일이야.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에번스프리처드, 말리노프스키, 베네딕트》, 클리퍼드 기어츠(지음), 김병화(옮김), 문학동네, 2014
Works and Lives: The Anthropologist as Author (1988)
저자가 《슬픈 열대》를 규정한 좀 긴 문장이 있어.
이 책은 상징주의적 정신(프랑스인)이 다른 상징주의적 정신(보로로인, 카두베오인, 남비콰라인)을 만나 그들 속에서 자신의 복제본, 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를 찾기 위해 그들의 완전한 정신적 일관성을 샅샅이 살펴나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p.60)
그러나 "쓸쓸한 일이지만 그의 탐색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p.63)
낯설게 보이는 생활의 기초를 꿰뚫어보는 것,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그곳에 있기'는 그들 속에 개인적으로 투입되는 방식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그것을 달성하려면 오로지 그들의 문화적 생산물(신화, 예술, 의례, 또는 그 무엇이든), 즉 낯설게 보이는 독특한 삶의 면모를 보편적으로 해석해 직접성을 해체시킴으로써, 그 낯섦을 사라지게 하는 수밖에 없다. 원격접사遠隔接寫란 거리를 둘 때 오히려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p.64)
기어츠는 "기존 인류학의 실증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며, 인류학은 과학이 아니라 현상 이면에 놓인 의미와 상징을 해석하는 인문학적 작업이라고 주장"한 학자야. 이 책은 인류학자 네 명의 "민족지에 나타난 상상력과 은유를 분석한 책으로, 인류학이 단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는 과학이 아니라 다층적 해석을 이끄는 글쓰기라고 주장"(저자 소개 중) 했는데,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네. 이 책 역시 단 하나의 진리를 주장하지 않고, 다층적으로 구성됐다는 느낌을 받았어.
대학생 필독서로 항상 꼽히는, 대학 졸업장은 받았지만 아직 읽지 않은 《슬픈 열대》를 읽은 후에 이 책을 다시 읽기로 했어. 그 명성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게 됐군. 그런데 대학생 중에 이 책을 읽고 졸업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궁금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