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족과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광화문 세종미술관에서 〈타카하타 이사오 展〉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어. 타카하타 이사오(1935~2018)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만화영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등의 감독이라고 하면 익숙할 거야. 특히 〈엄마 찾아 삼만리〉는 어린이의 여린 가슴에는 너무 슬펐어.
2017년 같은 곳에서 열렸던 〈스튜디오지브리 대박람회〉 전시는 실망스러웠는데, 이 전시는 풍부하고 디테일한 자료와 구성으로 볼거리가 많았어. 너무 길고 많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인상적인 전시물이 많았지만, 하나만 말해보라고 하면 〈가구야 공주 이야기〉(2013) 원화의 연필로 그린 선(線)이었어. 연필로 이런 표현이 가능하구나, 하고 감탄을 했네.
공주가 분노해서 뛰쳐나가는 장면을 표현했는데, 이런 장면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 움직임을 만들었다는 것에 새삼 경이로움이 느껴지더라.
생각은 이렇게 시작되어 연필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는데, 내가 연필을 좀 무시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어. (나는 그림은 못 그리니까 글씨의 영역에서만 생각했을 때) 이걸로 글씨를 처음 썼고, 항상 옆에 있었고, 이런 엄청난 잠재적 표현력을 갖고 있는 연필이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앞으로는 연필을 더 많이 쓰기로 했어. 책 읽을 때 밑줄 긋고 메모할 때만 썼는데, 이제는 좀 긴 글을 쓸 때도 연필로 써보려고.
연필의 가장 독특한 점이라면 심이 가늘 때가 있고 뭉툭할 때가 있다는 거겠지. 오랜 습관이겠지만, 뭉툭한 심으로 글씨를 쓸 때는 그 느낌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고 글씨도 예쁘게 써지지 않아서 바로 뾰족하게 깎아서 사용하곤 하잖아.
그런데 이제는 그 뭉툭함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쓴 글씨는 그것대로의 모양이 있더라고. 연필을 돌려가며 뭉툭한 심의 모서리를 찾아서 획을 긋는 재미도 있고.
만년필은 획의 굵기가 일정하지만 연필은 쓰면서도 그 굵기는 물론이고 흐림과 진함이 계속 변하는 게 매력이지 않을까. 마치 붓처럼 말이야.
그렇게 연필로 쓴 글씨로 붓으로 쓴 것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표현해 보고 싶어.
저는 다양한 문방구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연필은 무척 좋아해요! 느낌이 너무 좋아요! 너무 강하지 않고, 실수하면 지울 수 있고, 스윽~슥 소리나는 것이 넘 좋아요^^
저도 이 전시회가 끝나기전에 한 번 들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