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 "낭만주의자들에게 신적인 힘의 조직화와 발전의 최고 수준은 예술가나 철학자, 성인의 창조성에 해당했다."
프레더릭 바이저,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9)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8장 낭만주의 형이상학의 역설’을 정리해서 지식정원에 올려놨어. 형이상학에 대한 내용이고 분량도 많아서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네. 우선 논의 과정에서 철학자들 여럿이 언급되는데, 각 인물의 생몰 연대를 통해 앞뒤 감각을 익혀보자고.
데카르트 (1596~1650)
라이프니츠 (1646~1716)
칸트 (1724~1804)
피히테 (1762~1814)
슐레겔 (1772~1829)
셸링 (1775~1854)
8장 요약의 요약을 해보자면,
“1790년대 후반, 낭만주의 사상가들은 새로운 형이상학, 즉 이후에 낭만파를 특징짓게 될 세계관의 기본 윤곽”을 그리는데, 이것은 “관념론과 실재론을 종합하려는 시도”였고, 구체적으로는 “피히테의 관념론과 스피노자의 실재론을 종합하려” 했던 것이었어.
그런데 문제는 “피히테의 관념론과 비결정론, 이원론은 스피노자의 실재론과 결정론, 일원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었지(표 참고). 거의 불가능한 과제였지만 이 종합에서 “핵심은 주관주의와 독단론이라는 양극단을 피하고 비판적 인식론의 미덕을 자연주의적 존재론과 결합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었어.
저자가 이 장에서 논증하려는 주장은 “낭만주의 형이상학을 그것의 근저에 있는 유기체적 자연 개념의 맥락 안에 위치시키면, 이 형이상학이 완전히 이해 가능하고 일관적인 것이 된다”는 것이야. 바로 이 ‘유기체적 자연’이 종합의 중심에 놓여있는 개념이지.
이후 내용은, 초기낭만주의자들(특히 셸링을 중심으로)이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칸트, 피히테의 개념들을 비판하고 재해석함으로써, 관념론과 실재론을 유기체적 자연 개념 위에서 종합하는데 어떻게 성공했는지 설명하고 있어(이 과정은 중간 논의를 빼면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요약도 힘드네. 전체 요약 내용을 참고하기 바래).
이 어려운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잃은 것도 있었는데, “이제 낭만주의자들의 자유는 더 이상 급진적 자유”가 아니게 됐어. “혁명의 열기가 사그라지기 시작하면서 낭만주의의 에토스에 변화가 있었”는데, “구호는 더 이상 이성의 요구에 따라 세계를 변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대신 자연과 사회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성을 지각하고, 그것의 필연성과 자신을 화해시키자는 것”이 되어버렸어.
이 장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초기낭만주의자들이 당대의 이론적 딜레마를 해소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수립하기 위해서, 선배 철학자들의 이론을 도그마로 받아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재해석해서 폐기할 것은 폐기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 자신들의 형이상학을 구축했다는 점이었어.
다음은 ‘9장 칸트와 자연철학자들’이야. 이제 두 개 장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