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얘기 들어봤을 것 같은데, 중년을 넘어 나이가 들어가면 여성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랄까 네트워크가 더 풍성해지면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사는데, 남성들은 그런 네트워크로부터 단절되고 점점 더 고립되는 삶을 산다는 얘기.
내 주변만 봐도 그런 경우가 많고, 얼마 전 읽은 미국인 저자의 책에도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특수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일반화할 수 있는 얘기도 아닌 것 같아. 그러니 그냥 내 얘기를 해볼게.
난 어렸을 때부터 두루두루 친구를 만드는 성격은 아니었어. 다른 사람을 넓게 포용하는 심성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 정말 친한 친구 몇 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그래서 지금 몇 명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악인과 범죄자 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인정하면서 살려고 하고 있으니 그나마 포용심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넓혀가고 싶은 마음은 잘 들질 않아. 나와 비슷한 취향, 인생관, 연령대를 가진 남성들과 교류할 수 있다면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는 상상도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같은 취미가 아니라, 대략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는 정신을 가진, 신체적 나이에 기죽지 않는, 지적 호기심에 자극 받는, 관습적이지 않은, 관습적이더라도 반성적인, 공동체의 윤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남의 얘기는 한 시간 듣고 자신의 얘기는 10분만 할 수 있는, 로맨틱한 드라마를 보고 울기도 하는, 친절한 남성들의 모임. 음… 🦄판타지 같기도 하군. 이걸 보면 내 포용심은 전혀 늘지 않았어.
아주 만약, 이런 남성들이 모였다고 해보자. 뭘 하지? 골프 치고 술 먹자고 모이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독서토론회는 아닌 것 같아. 책 얘기 이상을 하고 싶은 건대. 그래서 지금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미지가 하나 있긴 한데 이런 거야.
자신의 삶에 대한 에세이를 모임에서 낭독을 해. 모임 장소에 마련된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말이지. 그 에세이는 매우 노력해서 쓴 글이어야 해. 부사와 형용사는 최대한 배제하고, 자신의 진심으로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친, 투명한 유리알 같은 글. 글의 기교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성을 극한까지 드러낸, 발가벗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자신에게 진실한 글. 이 글들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모임. 글을 모두 낭독한 후에는 소지(燒紙) 사르듯 글을 🔥태우고…(이건 좀 오버.🧯)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 건 아마도 ‘The Moth’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인 것 같아. 이 행사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으니, 내가 상상으로 덧붙인 이미지들이 있겠지. 아무튼.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성인의 도야된 생각과 살아온 것보다 짧을 삶과 점점 더 현실적이 되어가는 죽음에 대한 숙고를 글과 낭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타인과 정신적 교류를 할 수 있다면 내겐 가장 이상적인 인간들의 모임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판타지’를 쓰고 있으니 인간 관계가 좁아지는 것 같다, 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야.
2~3년 전에,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있는데, 문득, 그 녀석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어서 실망스럽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