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의 소셜 미디어를 보면 잔인무도함이 느껴져.
빠른 변화, 즉 강력한 불안의 시대에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개인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는 시대적 압력이 있고,
그 압력은 우리를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몰아넣는데,
인터넷, 특히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으로 대표되는 소셜 미디어가 바로 그 무대가 되어버렸지.
각자도생자들은 자신만의 컨텐츠와 브랜드를 구축중이지만, 사실상 소셜 미디어의 충실한 “영업사원”이 되어버렸어.
내 컨텐츠 앞뒤로는 나도 처음 보는 광고가 붙고, 광고료를 나눠준다고 해도 조건은 매우 까탈스러워서 주고 안 주고는 소셜 미디어 마음에 달려있어.
성실함에 대한 보상은 확실치 않으나, 불성실함에는 “알고리즘의 처벌”이 반드시 뒤따르지.
알고리즘에는 반항조차 할 수 없고 그 변덕스러운 비위를 살살 맞추는 수밖에 없어. 직장 상사 같은 거야.
그러려면 알고리즘 부장의 심중을 미리미리 받들어 내 피땀 같은 컨텐츠로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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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아 있던 이런 생각들이 ‘Everyone’s a sellout now(이제 모두가 변절입니다)’를 읽고 분명해졌어. 이제 그 압박은 미술, 음악, 문학 등을 하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지.
기사의 제목에서 ‘sellout’은 원래 ‘매진’이라는 뜻에서 확대된 ‘변절’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어. 척 클로스터만의 《90년대》를 인용하고 있는데, 마침 이 책을 가지고 있어서 해당 부분을 인용해 보면,
‘매진’이 ‘변절’이라는 비하의 의미를 띠게 된 기원은 엄밀히 말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음악가이자 비평가인 프란츠 니콜라이(Franz Nicolay)의 추적에 따르면 1862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처음 언급되었다고 한다. 이 표현이 예술계에서 멸칭으로 쓰인 것은 1967년 록 밴드 더후(The Who)가 〈The Who Sell Out〉이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했을 때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밥 딜런(Bod Dylan)이 19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통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나와 변절자 취급을 받은 사건이 그 효시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 《90년대》, p.41
기사가 이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예술가들이 이제 “진정성과 예술의 순수성에 대한 집착”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고, 소셜 미디어에서 이른바 기업가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야.
지옥 같고, 과대 포장되고, 괴롭힘이 난무하고, 경쟁이 치열한 관심 경제에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으면 아무도 여러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최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1999년 소비주의와 피할 수 없는 브랜딩에 관한 저서인 《노 로고(No Logo)》가 나온 이후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자아의 상품화가 모든 종류의 경제적 안전을 위한 유일한 길처럼 여겨질 정도로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는 우리에게 쉬지 않고 자신을 마케팅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소기업으로 변신한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논리적 종착점입니다. 현재의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하려면 디지털 허공에 소리쳐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두에게 알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 위 기사 중.
참으로 씁쓸하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한국의 모습과 많이 다른가?
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