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서 ‘진액(津液)’이 나온다는 상상을 하곤 해. 오랜 시간 동안 손으로 쥐고 만지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쓴 물건에서는 눈에 뵈지 않고 손에 묻진 않지만 그것이 가진 본질 같은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상상 같은 거야.
‘손때가 묻었다’고 하지? 길이 들고 정이 들고. 이미 뇌의 연장이 되고 뇌가 삼켜버린 물건. 그런 물건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
새것에 대한 쏠림은 손때를 묻힐 틈도 없이, 새것이 더 새것인 것에 자리를 뺏기곤 하지. “이거 새거(또는 신상품, 뉴모델, 추가기능)야.” 참 거부하기 힘든 순간이야.
이제 나도 헐어버린 사람이 되고보니 새물건보다는 그렇게 내 손때 묻힌 물건들을 찾게 돼. 뭔가를 새로 산다는 게 부담스럽고, 새로 산다고 해도 고민하는 시간이 더 늘었어(아. 책은 예외구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게 많기도 하고 내 방에 놓을 공간도 부족하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론이겠지만.
새것을 살 때는 이게 뜨내기처럼 스쳐 지나가는 물건이 될 것인지, 내 손과 정신이 그걸 길들이고 정붙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 물론 나도 ‘사고 싶다 → 결제 버튼을 누른다’의 단순한 과정을 반복한 적이 많았지. 지금도 광고의 공격으로 자제력을 잃을 때는 과거로 돌아가기도 하고 말이야. 소비의 최면에서 벗어나는 일은 참 힘들어.
레트로 열풍의 대상이 만약 몇 십년 전이 아니라 몇 년 전으로까지만 돌아갔다면 사람들이 새것을 사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들에 열광했을까? ‘새-옛날 물건’ 말고 ‘내-옛날 물건’들에 말이야.
디지털은 이런 틈을 주지 않으려 경주마처럼 항상 시선이 최신을 향해 있고 그것에 올라타려면 돈이 필요하지. 손때를 묻히는 것이 불가능하니 뇌와의 친밀감은 ‘최신 업데이트’마다 새로 시작이야. 여기서 오래된 것은 ‘에러’와 동의어니 말이야.
‘고장나면 버리지 뭐’는 너무 쉽고, ‘고장나면 고쳐서 쓰지 뭐’가 앞으로 내 기본값이야. 마음으로 쥐고 만지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쓰다 고장나면 고치고 그렇게 또 쓰고.
나... 50이 되면서부터 뭘 사기가 싫어짐! 먹는 거 빼놓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느낌이 있어~~ 너무 오래 살았나? 얼마 안 산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