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의 역사와 이론》은 몇 번 더 읽어야겠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수사학 역사를 총괄하면서 주요 사상가와 이론들을 빼곡히 소개하고 있어서, 이 책 내용을 잘 익힌 후에 심화 학습을 하면 수사학에 대한 유기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겠더라고.
특히 좋았던 점은 고대 희랍에서 시작해 발전해 온 서구의 주류 수사학뿐만 아니라 그 외 지역의 수사학들, 즉 고대 인도, 아프리카, 아즈텍, 이집트, 고대 중국, 12세기 아랍 등의 수사학에 대해서도 다뤘다는 거야. 제11장에서 ‘비교 수사학’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분량은 적지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수사학과는 다른 관점의 수사학을 확인할 수 있었어. 비교해 보니 고대 희랍인들이 얼마나 경쟁과 승부(요한 하위징아가 강조한 ‘아곤’)를 좋아했는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고, 희랍 수사학에도 그 기질과 환경이 반영됐을 수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도 했어.
또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 담론과 권력 관계에 대해 연구한 사상가들과 수사학의 연결 고리, 페미니즘 수사학 등도 다루고 있어. 수사학이 언어에 관한 학문이다보니 연관 사상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읽다보면 지금 사상사 책을 읽고 있는 건가 싶을 때가 있었어.
아쉬운 점은, 책에서 매우 중요한 학자 또는 저작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거의 없다는 거지. 그 학자들 중에 특히 케네스 버크(Kenneth Burke)의 저서가 읽고 싶었는데 말이지. 문학 이론가, 수사학자로서 중요한 학자라고 하고, 이 책에서는 《A Rhetoric of Motives》, 《A Grammar of Motives》를 언급하고 있어.
현대 수사학자들의 책은 더 말할 것도 없는데, 한국에서는 수사학에 대한 관심이 별로 크지 않은 탓 같아. 인터넷서점에서 ‘수사학’ 또는 ‘레토릭’으로 검색을 해보면 관련 책이 별로 없어(‘범죄수사학’ 때문에 많아 보일 수 있으니 주의). 그나마도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또는 그것과 관련된 책들이 차지하고 있지. 검색 결과에 새로운 책은 드문드문 추가될 뿐인데,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수사학총서’에서 가장 최근에 출간한 책이 카임 페렐만의 《수사 제국》으로 출판일이 2020년 12월이네.
아무튼 《레토릭의 역사와 이론》을 더 읽을 건데 무작정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았어. 원래 영어판에는 각 장이 끝나면 ‘Questions for Review’와 ‘Questions for Discussion’이 나오는데, 한국어판에는 이게 없더라고. 빼놓고 번역했나 싶어서 화가 날 뻔 했는데 다행히 책 뒤에 모아놨어.
그래서 이 ‘Questions for Review’(이하 ‘리뷰’)를 채우면서 항목별로 카드에 정리를 하려고 해. 가령 1장 ‘레토릭이란 무엇인가’의 리뷰 질문들은 이런 거야.
이 장에서 다음 용어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레토릭
레토릭 기술
레토릭 담론
레토릭 전문가
상징
레토릭 이론
논증적 가설
이 장에서 논의한 레토릭 담론의 특성은 무엇인가?
“레토릭은 계획적인 것이다”라는 소제목 아래서 어떤 구체적인 언어 자원들이 논의되고 있는가?
이 장에서 논의한 레토릭 기술의 사회적 기능은 무엇인가?
레토릭 기술에 대해 이해하면 어떤 세 가지 유형의 힘이 증진된다고 하는가?
레토릭은 상황 의존적 쟁점을 다룬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p.509)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자가 생각했을 때 해당 장의 핵심적 내용이겠지?
‘Questions for Discussion’은 문항 하나가 거의 논술 시험 한 개 문항과 맞먹는 것 같아서 나중에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가령 이런 거야. 좀 긴데…
다음의 역사적 문화유산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두 번째 취임 연설”과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 “성공이 그렇게 달콤한 것은”이다. 이 두 편은 거의 같은 시기에 썼는데, 모두 미국 남북전쟁에 관한 것이다. 이 글들은 종종 다른 담론 유형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링컨의 연설은 레토릭으로 범주화되는 반면, 디킨슨의 글은 시의 범주에 넣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장에서 논의한 레토릭 담론의 특성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링컨의 연설과 디킨슨의 작품을 구별하는 것에 관해서는 (만약에 있다면) 어떤 얘기들이 가능하겠는가? 그 글들은 상이한 문학적 또는 언어적 범주에 속하는가? 이들 둘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때 주장, 소구, 배열, 기술적 수단 등과 같은 언어 자원들로 돌아가서도 적용해 보라. 이 둘 각각은 네 가지 자원을 모두 다 사용하는가?
(pp.509-510)
쉽지 않지?
2024년에는 수사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해 보려고.
새해 건강하시고, 어떤 멋진 덕후가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작년에 뉴스레터보고 책은 샀었는데요. 재독하신다는 글을 보고 저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1장을 읽어보니 제가 그동안 수사학을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되네요. 항상 좋은 책과 뉴스기사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