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세 권을 휘뚜루마뚜루 읽게 됐어. 그 중에서도 음악, 소리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읽은 《다른 방식으로 듣기》가 가장 흥미로웠네. 소리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었어.
《다른 방식으로 듣기: 스트리밍과 노이즈캔슬링 시대에》, 데이먼 크루코프스키(지음), 정은주(옮김), 마티, 2023.
책 전체의 주제 의식을 요약한 결론이야.
이 신호와 소음의 문제는 단지 〈Pet sounds〉의 어떤 믹스 버전을 더 좋아하느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음악 마니아들이 갑론을박하기 좋아하는 종류의 논쟁을 훨씬 넘어서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차이는 소음으로 풍요로운 세상과 오로지 신호만을 얻으려 애쓰는 세상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소통으로의 전환 속에서 우리가 겪어온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이 시리즈 전체를 통해 제가 목표한 것은 아마 우리가 항상 생각하지는 않을 소리의 여러 측면에 주의를 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저는 우리를 둘러싼 소음의 다양한 부분을 강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이유는 보다 폭넓은 소음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 각자에게 의미 있는 신호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울러 그 신호들을 어떻게 하면 서로와 가장 잘 공유할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p.133)
이 책은 팟캐스트로 방송된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는데, 좀 역설적이긴 해도 따라해보고 싶은 시도야. 강연을 책으로 만들기도 하니까 터무니 없진 않지. 아, 《지대넓얕》 같은 책도 있구나.
대부분이 ‘신호 vs. 노이즈’ — 신호는 좋은 것, 노이즈는 나쁜 것이라는 구도로 얘기하는데, 사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소음이고 그 중에 내가 원하는 것이 신호가 되는 거지. 아날로그 라디오에서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는 행위를 떠올려봐도 되겠어. 취향도 그런 것 아닐까? 어떤 사람에게는 쓰레기 같은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즐기는 취향이 되는.
취향뿐 아니라 내 사명, 영감, 정체성, 인생 목표 등이 내가 발견한 신호 아닌가 싶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와 타인을 구분해 주는 것 같네.
👾지식정원에 간단히 정리해놨으니까 참고.
《만남들: 우리는 매일 다시 만난다》, 앤디 필드(지음), 임승현(옮김), 필로우, 2023.
읽기 힘든 책 유형 중 하나가 나와의 현실적인 연결 고리를 찾기 힘든 것들이야. 2천5백년 전에 쓰인 고전이라고 해서 그 연결 고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올해 쓰인 책이라고 해서 항상 있는 것도 아니지.
이 책을 집어들게 된 동기는 책 소개를 읽고 일상을 얼마나 일상적으로 잘 표현했나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었으나, 그 일상이 내가 경험하거나 짐작할 수 없는 일상이라면 내게는 전혀 일상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하나만 인용하자면, 앞의 책 《다른 방식으로 듣기》와 연결된 부분이야.
유선전화는 일련의 스위치로 만든 전기회로를 통해 두 개의 전화기를 서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 사회기반시설은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마치 끈으로 연결된 두 개의 깡통처럼 두 명의 발화자를 연결했다. 반면 무선전화는 옥상과 기지국에 설치한 일련의 송수신기를 통하는 셀룰러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하므로, 우리가 경험했듯이 통화 품질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전화 통화가 답답하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졌다. …
1960년대에 효율을 위해서 전화 통화의 주파수 대역을 음성대역이라고 부르는 좁은 범위로 압축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인간의 음성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대역에 확실하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더 높은 주파수 대역을 제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높은 대역에 포함된 소리의 중요한 요소가 손실되었다. …
이는 21세기 전화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항상 어디에나 존재하기를 원했던 전화기는 애초에 전화 통화를 특별하게 만든 본질적인 특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pp.85~86)
《야생의 식탁: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 모 와일드(지음), 신소희(옮김), 부키, 2023.
이 책은 해당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뉴스레터 구독자 한 분이 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어. 내 돈을 주고 산 책만 소개하는 것이 내 원칙이야. 그러나 (내 소중한 구독자분이 부탁한) 이런 경우에는 내 돈으로 책을 한 권 사서 구독자 한 분께 선물하는 것으로 했어. 이 책 《야생의 식탁》을 읽고 싶은 구독자께서는 댓글로 신청하시면 선착순 한 분께 보내드리겠습니다. 알라딘 ‘선물하기’로 보낼 예정이니까 이메일 주소 또는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시면 됩니다.
그러나 소개는 하지만 호평만 할 수는 없지. 내가 느낀 대로 쓸거야.
이 책은 스코틀랜드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험실 속에서 이루어진 과학실험 같은 내용이야. 채취인이자 약초 연구자인 저자가 가장 많이 듣는 “채취만으로 정말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일년 동안 야생식만 먹는 실험을 하면서 기록을 했어.
저자는 채취, 야생식에 관한 고도의 전문성이 있고, 실험 공간이 스코틀랜드라는 특수성도 있어.
"스코틀랜드에서는 누구에게나 배회할 권리(공유지와 사유지를 포함하여 자연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원하는 활동을 할 권리 — 옮긴이)가 있다."
(p.21)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실험은 힘들긴 하지만, 야생과 채집에 문외한인 내가 볼 땐 거의 완벽에 가깝게(굶어죽지 않는다!) 이루어져. 그러나 우리는 이 실험 결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저자의 ‘실험실’을 벗어난다면?
“자연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인간과 지구의 단절을 치유할 방법”(p.13)이라는 것에 동감하지만, 저자와 같은 전문성이 없고 스코틀랜드와 같은 자연이 아닌, 한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독자는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한 외국인의 용감하고 의미 있는 시도를 구경하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걸까?
한국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임야에서 뭔가를 채취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바다도 마찬가지고. “젊은 층에서 더 단순하고 진정성 있는 삶과 생활 방식을 갈망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p.15)다는 것에 동감하지만 이런 ‘야생식 채취’가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야.
아마도 저자가 무의식적으로 상정한 독자들은 스코틀랜드와 같은 자연을 향유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 소비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자유와 단순함 속에서 살 수 있겠지. 그러나 저자의 전망은 한국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나와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 같네.
#507 책 세 권
《야생의 식탁》은 한 분이 서울외계인 디스코드를 통해서 신청해 주셨네요. 그럼 이 분께 보내드리고 마감하겠습니다. 😁
외계인님께 좋은 일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