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책은 《뉴 로맨틱 사이보그》였으나, 한눈을 좀 팔았어. 요즘 읽는 것마다 따라다니는 키워드 중에 ‘서사’가 있다고 했는데, 한병철 교수의 《서사의 위기》가, 뭐랄까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할까, 그래서 읽어보게 됐어.
《서사의 위기》, 한병철(지음), 최지수(옮김), 다산초당, 2023.
예전에는 베스트셀러 쪽 책은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이젠 좀 바뀌었어. 내 관심사와 닿아만 있다면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려고 해. 항상 성공적인 시도는 아니었지만 이번 책은 괜찮네.
한병철 교수의 대표작은 《피로사회》일텐데, 이 책도 학적인 책이라기보다는 현대의 경향을 진단하는 ‘철학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어. 논증의 기반이 되는 철학자, 작가 들은 주로 벤야민, 하이데거, 니체, 프루스트, 사르트르, 프로이트, 보들레르 등인데 그 중 발터 벤야민의 비중이 매우 높아. 탈신비화에 대한 비판을 고려했을 때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이건 낭만주의를 더 공부해보고 판단해보려고 해.
저자가 서사의 위기를 진단하고 (명확치는 않은)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야기 공동체’야. 이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안은 없어. 철학 에세이에서 그것까지 기대하는 것은 내 생각에도 무리라고 봐. 저자의 목표는 서사의 중요성 강조, 그것을 위기에 몰아넣은 근대와 현대의 문제를 지적, 현상황(“스토리 중독 시대 서사의 위기”!)을 진단하는 딱 거기까지.
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animal narrans)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식, 즉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제한다. ...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 시대 서사의 위기가 있다. (p.136)
책 전체 분량이 144페이지이지만 작은 판형, 요즘 책 치고는 큰 글씨, 넓은 행간과 여백을 고려하면 간신히 책 한 권으로 만들 수 있는 분량이었지 않나 싶네. 그만큼 부담 없이 금방 읽을 수 있다는 거지. 두껍다고 좋은 건 아니니까.
책에서 자주 인용하는 벤야민의 〈경험과 빈곤〉이 읽어보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발터 벤야민 전집 중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에 실려 있더군. 열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야.
정리한 카드는 역시 👾 지식정원에 올려놨어.
삶은 이야기다... 살다보면 근사한 이야기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지금 숨쉬는 것 자체가 선물인 것 같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냥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