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된 국가》, 류하이룽(엮음), 김태연 외(옮김), 갈무리, 2022.
이 책은 중국의 ‘디바 출정’이란 사건에 대해 논의한다. ‘디바(帝吧)’는 중국(또는 세계) 최대 포털 바이두에서 가장 큰 규모의 커뮤니티다. 우선, 디바 문화의 특징은 “주로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네티즌의 자조를 바탕으로 독특한 유희와 반어의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자조적인 면과 세상에 대한 분노라는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p.8)
이 디바가 주도한 이른바 ‘디바 출정’은, JYP ‘트와이스’의 쯔위가 한 방송에서 중화민국의 청천백일기를 흔들고, 자신이 중국에서 왔다는 말을 정정하며 타이완에서 왔다고 소개한 것으로부터 촉발했다. 당시 타이완 총통 대선 후보였던 민진당 주석 차이잉원이 쯔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며칠 뒤 차이잉원은 대선에서 승리한다.
그러자 디바는 2016년 1월 20일 대륙 네티즌들을 조직하여 차이잉원 및 타이완의 뉴스 매체 등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대량의 댓글 공격을 시작한다. 이 공격은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이나 일본 등을 대상으로 한 이전 온라인 공격들과는 내용과 형식 측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책은 관련 분야의 학자들이 각자의 관점, 방법론으로 이 사건에 대해 논증한다. 저자들이 함께 고민했던 문제들은 이렇다.
어떤 원인으로 인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던 청년들이 갑자기 정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인터넷 민족주의 정치운동에 참여했는가?
이러한 민족주의 운동은 과거 중국의 민족주의 운동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이러한 인터넷 민족주의 정치운동의 배경이 된 정치의식과 청년문화는 미래의 중국 정치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질까?
(p.10)
디바 출정의 주축이 된 이들은 ‘소분홍(小粉紅)’이라고 불리는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청년들, 즉 중국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였다. (p.41) 중국 네티즌은 약 7.1억 명으로, 10~39세가 전체의 75%, 20~29세가 전체의 30%를 차지하는데 대다수가 학생, 자영업자, 프리랜서이다. (p.71) 전체 사용자 대비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1960~1970년대생들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을 기존의 생활방식과 융합하는 반면, 1980~1990년대생들은 완전히 인터넷에 의해 생활방식을 만들어가고, 교육, 사회적 상호작용, 게임, 뉴스 획득, 소비, 감정적 커뮤니케이션 등에 대한 욕구를 인터넷으로 충족한다. 이들은 인터넷을 그들의 일상생활 공간이자, 세계를 상상하고 세계와 연결되는 인터페이스로 여긴다(p.277)는 점은, 디바 출정에 기꺼이 참여한 동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책은 모두 8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이 논증을 위해 사용한 이론들의 핵심어들을 나열해보면 이렇다: 정체성, 민족 의식, 민족주의, 팬덤, 사이버 민족주의, 밈 커뮤니케이션, 상호작용 의례, 집합행동, 비주얼 액티비즘, 이미지 경합 민족주의, 탈주술화, 정치적 스타일, 문화적 기술, 합의 동원, 소비자 민족주의, 대중 민족주의, 비판적 현실주의, 하위문화, 공동체, 집합적 흥분, 주체성, 통일된 상상력, 사이버 문화, 범정치화, 범엔터테인먼트화, 권위주의, 상호 심리적 영역, 담론 패턴 등
이렇게 저자들은, 이후에는 하나의 패턴이 된 디바 출정을 모델로 중국의 정치적 상황, 그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민족주의, 문화와 기술로서의 인터넷, 1990년대 이후 청년들의 현실 들의 관계와 영향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논증하고 있다.
1장과 8장은 총론의 성격이 강하다. 디바 출정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다루다보니 2~7장의 내용도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각 장의 접근 방법이 달라서 크게 거슬리진 않는다. 다만 7장까지 순서대로 읽은 독자라면, 엮은이가 쓴 8장은 앞 장들에서 등장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해 지루할 수도 있으나 총정리로 생각하고 읽으면 참을 만하다.
이 책은 다양한 이론을 동원한만큼 다양한 책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 책들 중 나를 추가적인 독서 욕구로 이끌고 있는 한국어판 책들은 이렇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문화와 사회를 읽는 키워드》
레이먼드 윌리엄스, 《키워드》
엘리자베스 L. 아이젠슈타인, 《근대 유럽의 인쇄 미디어 혁명》
리모르 시프만, 《디지털 문화의 전파자 밈》
랜들 콜린스, 《사회적 삶의 에너지: 상호작용 의례의 사슬》
에밀 뒤르켐,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다른 국가에 대한 폭력으로까지 보이는 중국 청년들의 이른바 ‘애국주의’ 행태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국내 미디어에서 소개하는 것 이상의 뭔가가 이면에 있을 것 같다는 의심도 있었다.
이제는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던 중국, 중국 청년들의 상황을 약간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의 태도를 한마디로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이 말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반항적인 순종.
반항적인 순종이라~~ 중국이라는 국가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자 기회일지 모르겠으나, 초강대국(거대국가)의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이 패거리처럼 몰려다니는 것은 이웃나라 사람들에게는 마주치기 싫은 두려움이자 견디기 힘든 폭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