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책 몇 권 (6)
I am DIAGRAM, 재즈로 숨을 쉽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극장국가 느가라, 문화의 해석, 뮤즈 글쓰기를 배우다, 부족의 시대
최근 산 책 몇 권을 정리해보려고 해.
《I am DIAGRAM》, 담디 편집부(엮음), 담디, 2017.
사실 ‘다이어그램’이란 제목과 본문 중 설계 스케치만 보고 잘못 산 거에 가까운 책이야. 오프라인 서점에서 봤다면 안 샀을 책이지만, 온라인이 아니라면 발견도 못할 책이었겠지. 그래도 ‘사이클롭스의 눈’이라는 건축물의 스케치를 본 것만으로도 책값을 건졌다고 생각하는데, 신화, 머리 속에만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시각화되어 물리적 건축물로 연결되는 과정을 단편적으로라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야.
《재즈로 숨을 쉽니다: 자유와 즉흥의 음악, 재즈에 빠져든 스무 명의 브라스 아티스트》, 최수진(지음), 아트레이크, 2022.
저자 최수진씨는 트롬보니스트이자, 월간 〈재즈피플〉 필자야. 거장, 스타, 국내에 소개 안 된 연주자, 신예 등 스무 명의 브라스 아티스트를 다루고 있는데, 1. 아티스트의 아티스트, 2. 자유로운 재즈의 길, 3. 형형색색의 재즈 등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됐어. 각 아티스트마다 대표작을 소개하고, QR코드로 대표곡을 유튜브로 연결해서 들어볼 수 있다는 게 좋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제이슨 델 간디오(지음), 김상우(옮김), 동녘, 2011.
공부하고 있는 수사학에 대한 새로운 활용 영역인 것 같아서 읽고 싶었어. 특히 4장 ‘몸으로 하는 혁명’ 중 ‘몸으로 논증하기’ 같은 내용은 흥미롭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며, 그것이 가능하려면 활동가와 조직가의 ‘수사학’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이나 연설뿐 아니라 몸까지 적극 활용하는 수사학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중)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극장국가 느가라》, 《문화의 해석》 — 클리퍼드 기어츠(지음)
〈강유원의 북리스트〉 6월 24일자에서 《극장국가 느가라》 서평을 듣고, 저자인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라는 학자에 대해 알게 됐어. 그간 궁금했던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책 중에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문화의 해석》 등을 사게 되었네. 원서가 출간된 순서는 《문화의 해석》 (1973), 《극장국가 느가라》 (1980),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1988)인데, 내 관심사에 따라서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극장국가 느가라》, 《문화의 해석》 순서로 읽어보려고 해.
이 연구 자체는 전기나 역사가 아닌, ‘인류학자들이 글을 쓰는 방식’에 주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이 책은 텍스트 지향적이다. … 여기에서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약간 다른, ‘문학적’이라 할 만한 성격의 문제로, 평소 인류학 논의에서 별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로서의 인문학》, 서문 중)
[나의 논문집에 포함된] 그 논문들은 모두가 기본적으로는 문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그것을 제대로 연구하는 것인가에 대한 특정의, 특이하다고도 할 수 있는 관점을 하나하나의 사례를 통하여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 이 책이 비록 명목상으로는 논문집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련의 구체적 분석들을 통하여 발전시킨 문화이론으로서의 일정한 논고를 제시하는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문화의 해석》, 서문 중)
《뮤즈, 글쓰기를 배우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구술과 문자에 관한 생각》, 에릭 A. 해블록(지음), 권루시안(옮김), 문학동네, 2021.
《저자로서의 인류학자》가 나온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시리즈 중 더 볼만한 책이 있나 살펴보다가 역시 수사학, 연설, 구술문화로 연결되는 관심사에 해당되는 책이 있었어.
학자로서 해블록의 주요 관심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바뀐 과정과 그것이 현대 서양 사상과 사고에 미친 영향으로, 고전 세계와 구술-문자 전환기를 이해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내놓았다. 그는 서양의 사고는 모두 고대 그리스가 구술 사회로부터 문자 사회로 전환되던 시기에 인간의 마음에 일어난 본질적 변화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본다. 그의 이런 견해는 고전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고전학을 넘어서 폭넓은 학문 분야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해블록은 월터 J. 옹과 아울러 구술-문자 전환기를 연구하는 학문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그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 중 하나다. (저자 소개 중)
이 책의 의도는 인간의 의사소통 역사에서 있었던 고비, 즉 그리스 구술성orality이 그리스 문자성literacy으로 탈바꿈한 때를 하나의 그림으로 통합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 우리 인류사에서 그리스 문학과 그리스 철학은 문자로 적힌 말이 최초로 빚어낸 쌍둥이에 해당하는 활동이다. (p.11)
《부족의 시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쇠퇴》, 미셸 마페졸리(지음), 박정호·신지은(옮김), 문학동네, 2017.
이 책 역시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에서 나왔는데, 이 ‘부족’이라는 단어는 테크업계에서는 ‘트라이브tribe’라고 부르며 유행하는 용어이기도 해. 마케터로 유명한 세스 고딘이 ‘트라이브’라는 제목의 책으로 유행시킨 것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긴 해. 이 자가 쓴 책은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해서 이 (마케팅 용어가 아닌) ‘부족’ 개념에 대해 궁금하긴 했지만 책을 읽진 않았는데, 학문적 연원을 발견해서 반갑네.
나는 사회관계의 변화를 특징짓기 위해 ‘부족tribu’이라는 은유를 제안했다. 이 용어는 이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외부의 용병들이 이 용어를 탈취해갔다. 몇몇 지식인은 — 종종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만 — 이 용어를 나름의 방식대로 중요하게 다루는가 하면, 저널리스트들은 이 용어를 분별없이 사용한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좋든 싫든 부족주의의 현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특별한 지리적 환경에 국한되지 않는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다. (p.12)
(신화에는 중복된 표현, 창작품에는 ‘강박관념’이 내재해 있긴 하지만) 나는 반복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말들’을 두 가지 중대한 기본 축을 통해 종합하려고 한다. 한 축은 부족주의의 ‘구식이면서’ 동시에 ‘젊은’ 측면을 강조하고, 다른 한 축은 부족주의의 공동체적 차원 및 개인 개념의 포화를 강조한다. 이 두 축이 포스트모던 부족주의의 두 뿌리를 이룬다. 따라서 근원적 사유가 중시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두 축이다. (p.13)
자, 여기까지.